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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아웃도어 라이프] 겨울 산악레포츠의 꽃 '빙벽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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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속초등산학교 빙벽반 교육 참기기

지난 7일 국립속초등산학교 빙벽반 교육생들이 강원도 양구 용소빙벽장 얼음벽을 오르고 있다. 국립속초등산학교 제공
지난 7일 국립속초등산학교 빙벽반 교육생들이 강원도 양구 용소빙벽장 얼음벽을 오르고 있다. 국립속초등산학교 제공

국립속초등산학교를 출발한지 50여 분. 강원도 양구 용소빙벽장에 도착했다. 눈앞엔 푸른빛을 띤 거대한 얼음벽이 버티고 서있다. 잠시 얼음벽을 멍하니 바라봤다. 푸른 얼음벽 위에서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빙벽화에 크램폰(등반용 아이젠)을 장착하고 안전벨트를 착용하면서 호흡은 거칠어졌고 마음은 조금 떨려오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아니라, 꼭 20년 만에 다시 빙벽등반을 하게 된데 대한 설렘이었다.

◆잠들었던 빙벽등반 욕구 꿈틀

2006년 봄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 이후, 좋아하던 등반을 포기하며 살았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였다. 등반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2년 전쯤 산을 다시 다녀보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씩 산행의 난이도를 높여갔다. 15㎏쯤 되는 배낭을 메고 이틀간 40㎞ 정도를 걸어보기도 했다. 하산 때면 가끔씩 수술했던 부위가 불안정해 통증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다닐 만했다.

동네 헬스장에서 중량운동도 시작했다. 새벽 수영도 다녔다. 조금 더 안정적인 산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자신감이 붙었다. 지난해 가을엔 등반을 시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함께 로프를 묶고 등반할 사람(자일 파트너)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 함께 등반을 하던 친한 선후배 대다수는 산을 떠났다. 이따금씩 등반을 이어왔던 유일한 선배마저도 사는 곳이 서울과 대구로 달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가을 설악산 장군봉 등반을 하겠다던 목표는 그렇게 사라졌다.

겨울로 접어들자 SNS엔 빙벽등반 콘텐츠가 속속 올라왔다. 잠들어있던 빙벽등반 욕구가 꿈틀댔다. 수차례 히말라야 원정등반을 다녀오고 외설악산악구조대 대장을 지낸 속초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그 또한 개인적인 이유로 이젠 등반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1월 중순을 지나고 있었다. 곧 봄이 찾아올 것 같은 조바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별로 가깝지 않은 이들과 로프를 묶고 등반하고 싶진 않았다. 그때 마침 SNS를 보다가 접하게 된 국립속초등산학교 빙벽반 교육생 모집 공고. '이거다!'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된 순간이었다.

지난 7일 강원도 양구 용소빙벽장 빙벽을 오르는 기자를 박수호 강사가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다. 국립속초등산학교 제공
지난 7일 강원도 양구 용소빙벽장 빙벽을 오르는 기자를 박수호 강사가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다. 국립속초등산학교 제공

◆20년 전 등반 감각 되살아나 뭉클

교육 첫날인 목요일 오전까지 마감해야 할 칼럼을 쓰고 등반 장비를 챙기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그렇게 오전 7시 30분쯤 대구를 출발했고, 다행히 집결시간인 오후 1시에 맞춰 국립속초등산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무 명의 교육생이 모였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곧바로 이론교육과 실내 실습교육이 이어졌다.

"빙벽등반용 손도구인 '아이스 엑스(ice axe)'를 치켜든 두 팔의 위치는 양어깨 너비 안에, 두 발은 양어깨보다 넓게 서야 자세가 안정됩니다."

문성욱 강사가 '엑스(X)바디'로 불리는, 빙벽등반의 가장 기초적인 4지점 자세를 설명한다. 그는 대중에겐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 산악계의 대표적인 등반가로 꼽힌다. 최근엔 알프스를 대표하는 6대 북벽을 164시간 만에 모두 올랐다. 이어 그는 '지그재그바디'로 불리는 3지점 자세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모든 등반이 그렇듯이 빙벽 역시 발과 다리로 오르는 겁니다. 팔로 잡아당기듯 하면 제아무리 장사라 해도 오를수록 지치게 마련입니다." 국내를 대표하는 여성 고산거벽등반가인 이명희 강사가 국내에서 개발됐다는 2지점 자세인 '엔(N)바디'를 설명했다. 오른쪽 아이스 엑스를 타격했다면 그 수직 아래에 왼발로 자세를 잡는 식이다. 그러면 자연히 오른발이 바깥쪽으로 나가며 엔(N)자 모양이 나온다. 4지점 자세에 비해 힘을 아끼며 등반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이명희 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후 교육생들은 빙벽등반 장비를 착용하고 실내에 마련된 연습용 벽에 매달리며 3가지 등반 자세를 익혔다.

이튿날엔 용소빙벽장에서 본격적인 등반 교육이 이뤄졌다. 가장 기초적인 4지점 등반 기술을 교육했다. 서너 명씩 조를 이뤄 각각 강사가 배치된 다섯 개 코스를 순환하며 등반하는 식이다.

대다수 교육생들이 최소한 암벽등반 경험자이어선지 높이에 대한 공포감은 크게 느끼지 않는 듯 보였다. 다만 일부 교육생은 공포감 때문인지 자세가 엉성했다. 높이가 주는 무서움이라기보다는 빙벽에 살짝 걸린 아이스 엑스와 크램폰이 혹여 빠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더 강한 공포감을 만들어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래전 등반했던 감각을 몸이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 가을 다시 등반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로 늘 이점이 궁금했다. 드디어 차례가 돌아왔다. '출발!'을 외친 뒤 등반을 시작했다. 몸은 가벼웠고 특별히 자세를 신경 쓰지 않더라도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빙벽등반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쓰는 '막바디'란 용어가 있다. 공포감 때문에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거나 빙벽의 형태 탓에 균형이 깨지며 나오는 기묘한 자세를 우스갯말로 표현한 말이다. '막바디가 돼 웃음거리가 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7일 국립속초등산학교 빙벽반 교육생들이 강원도 양구 용소빙벽장 얼음벽을 오르고 있다. 국립속초등산학교 제공
지난 7일 국립속초등산학교 빙벽반 교육생들이 강원도 양구 용소빙벽장 얼음벽을 오르고 있다. 국립속초등산학교 제공

◆각기 다른 사연…'산'이라는 같은 목표

사흘째 날엔 3지점 등반기술 교육이 이어졌다. 몇 차례 빙벽을 오르내린 뒤 오전 교육이 끝날 즈음 몸에 문제가 생겼다. 보행 중 왼쪽 종아리에 매우 강한 근육 뭉침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 수영을 하며 이 같은 조짐을 느꼈었기에 전해질 보충을 위해 이날도 아침부터 이온음료를 계속 마시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3시가 될 때까지도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오후 교육인 2지점 등반기술을 연습할 수 없다는 생각에 조바심마저 들었다.

사실 20년 전 수도권에선 이미 상당수가 2지점 자세를 활용했지만, 당시 대구에선 2지점 등반기술을 쓰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미디어 환경이 지금처럼 좋지 않아 새로운 기술의 전파속도가 더뎠던 탓이다. 그랬기에 이번 빙벽등반 교육의 개인적 목표는 2지점 자세를 국내 수준급 등반가들의 지도로 익히는 것이었다.

이런 고민을 이명희 강사와 상의했다. 이 강사는 이런 상태로 등반을 하기 보다는 차라리 병원을 다녀오라고 권유했다. 결국 그의 말대로 병원에서 근육이완제 주사를 맞고 진통제 처방을 받으며 회복에 집중했다.

마지막 날이 밝았다. 전날 병원에 다녀와서인지 통증은 절반 이상 준 듯 했다. 등반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용소빙벽장으로 가는 내내 설렜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바로 내려오라는 강사의 당부와 함께 등반을 시작했다. 이번 시즌엔 꼭 빙벽등반을 하겠다는 생각에서 꾸준히 등반 영상을 본 게 이미지 트레이닝이 된 건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2지점 등반기술이 막힘없이 나왔다. 그렇게 몇몇 코스를 오르내리며 등반을 이어가고 있을 때 안전벨트에 걸어둔 무전기에서 한 강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세 좋습니다. 종아리 아픈 거 맞습니까? 이제 하산해도 되겠네요."

사실 교육을 마치고 대구로 온 다음 날, 종아리 전체가 퉁퉁 부어올라 다시 병원에 갔다. 초음파 진단 장비로 살펴본 결과는 가자미근 파열. 이런 상황에서도 즐겁게 등반을 한 모습이 떠올라 '픽' 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왜 이리 등반에 목말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 참가자중 제일 고령자는 여성으로 교육 이틀째 날 칠순을 맞았다. '이때가 아니면 평생 못해볼 것 같다'며 교육에 참여한 탓에 자녀들이 속초로 와서 칠순 잔치를 했다. 무릎 부상 탓에 끝까지 교육을 마치진 못 했지만 내년에 꼭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에서 근무하는 김한빛(43) 씨는 서울시립대 산악부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가정을 꾸리고 해외근무를 오래 한 탓에 등반활동을 할 수 없었는데 지난해 다시 암벽등반과 빙벽등반을 시작하며 산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정영만(40) 씨는 올해 1월 아웃도어 업체가 운영하는 등산학교에서 처음 빙벽등반을 접한 뒤 1개월도 채 안 돼 다시 등산학교 교육에 참여했다. 점점 등반에 대한 꿈이 싹트고 있다며 오는 봄엔 암벽등반 교육도 참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처럼 참가자들의 사연은 제각각 달랐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점을 찾자면 '산에 대한 열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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