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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품은 영화] 엑스컬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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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 한 장면
영화 의 한 장면

잔뇨감에 시달리는 중년의 사내가 모처럼 치르는 정사(情事) 중에 여전히 남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곧추세운 자신의 남성미를 격렬히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존 부어맨 감독의 <엑스컬리버>를 감상하면 된다.

집단적인 발기부전 증상을 숨기기라도 하는 양, 번쩍이는 크롬 도금으로 무장한 기사들이 "One Land, One King"이란 진지하고 엄숙한 대의를 부르짖으며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광경이 분명 어리석어 보이지만 자못 눈부시기까지 하기도 하다.

고대 켈트 신화의 대표격인 '아서왕 이야기'는 하나의 원작으로 존재치 않았다. 켈트족은 한 곳에 정착하기보단 방대한 지역을 유랑했기 때문에, 아서왕 이야기는 여러 민족 사이에서 비슷하지만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며 구전되어 내려왔다. 게다가 켈트족은 기록 남기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중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자로 쓰이기 시작했다.

<아발론 연대기>의 저자 '장 마르칼'은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유럽 각지의 중세 작가들이 쓴 아서왕과 성배 전설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는 작업을 한 다음, 40년에 걸친 집필을 통해 마법사 멀린과 아서왕의 탄생, 원탁의 기사들이 펼치는 모험, 성배를 찾는 고난, 랜슬롯과 귀네비어의 금지된 사랑 등을 담은 대서사시를 완성해낸다.

영화 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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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기사 모험담은 대부분 민담의 색채가 짙었다. 그렇지만 <아발론 연대기>는 서술방식에 있어 궤를 달리하며, 신화적인 성격을 강하게 부여한다. 용기와 절제, 그리고 희생을 통해 인간의 위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기사들의 모습은 영웅 신화의 전형을 답사한다. 그런데 이런 영웅담은 식상하다며, 신화적 아우라에 마침표를 찍는 영화가 등장했으니, 그 이름하여 <엑스컬리버>.

아서왕의 전설을 기괴하게 재해석한 이 영화는 마치 주술에 걸린 흑마술의 광기에 휩싸여 있는데다, 과장된 허세와 요란한 미장센을 끊임없이 보여주기에 지켜보기가 다소 황당할 수도 있다. 심지어 1970년대 에로 영화가 애용했던 과장된 미스트 필터의 남용이 선사하는 미적 감각을 보고 있노라면, 행여 이 영화가 고전 예술로 가장한 소프트 포르노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순수한 영화적인 경험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을 둘러싼 황당한 무용담이 다소 유치하다손 치더라도, 잠시라도 눈을 뗄 지루함이나 산만함의 구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매혹적인 구라와 부조리한 욕망이 주는 자극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진부하지만 노골적인 향락에 기꺼이 항복하는 관찰자로 남을 수 있다.

영화 의 한 장면
영화 의 한 장면

중년의 나이에 때늦은 호르몬이 폭발을 주체하지 못해서, 과장된 멜로드라마를 꿈꾸는 고개 숙인 남성들의 판타지는 위험한 동시에 애틋하다.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와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이 가슴 속에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한들, 약주 거나하게 걸치고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음악은 트로트 몇 곡이 전부인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수컷의 삶을 감내하는 이상, 누구든 엑스컬리버 한 자루를 은밀히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칼날을 얼마나 벼려왔건 간에.

비록 낡고 녹이 슬어 오랫동안 납도(納刀)해두었던 칼일지언정, 발도(拔刀)를 꿈꾸지 않는 칼이 어디 있으랴. 서슬푸른 날이 아닐지언정, 꼿꼿이 쳐들고 싶지 않은 발기(勃起)가 또 어디 있으랴.

김유현 영화 다큐작가
김유현 영화 다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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