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항일 민족 시인 이육사에게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섯 형제가 있었다.
첫째 이원기(독립운동가)를 비롯해 ▷둘째 이육사(본명 원록) ▷셋째 원일(서예가·독립운동가) ▷넷째 원조(문학평론가) ▷다섯째 원창(조선일보 기자·조선중앙일보 편집국장) ▷여섯째 원홍(화가). 원기·육사·원일 3형제는 1930년 대구격문사건으로 투옥 생활도 하는 등 6형제 모두 직간접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관여했다. 이는 어머니 허길 선생의 영향이 컸다. 허길 선생 또한 대대로 독립운동 집안으로 이름나 있었다. 이원기의 조부 이중직은 이들 6형제의 투철한 민족의식과 우애를 기려 당호(堂號)를 '육우당'(六友堂)이라고 지었다.
대구의 육우당(중구 남산동 662-35번지)은 현재 반월당역서한포레스트가 들어선 자리에 있었다.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육우당은 허물어지고 대신 아파트 옆에 이육사 등 6형제를 기리는 '이육사기념관'(2923년 11월 개관)이 들어섰다.
이 과정을 지켜본 육우당 주손 이승환(70) 전 경산산업단지관리공단 전무는 못내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아파트 부지 한쪽에 대지면적 216㎡, 연면적 48㎡, 지상 1층 규모로 마련된 기념관이 너무 협소해 육우당 관련 자료를 충분히 전시하거나 보관하지 못해서다.
현재 경산에 있는 이승환 씨의 집에는 이원기 선생의 간찰(簡札) 등 유품을 상당량 갖고 있다. 그 중엔 넷째인 이원조 선생이 1944년 1월 17일 이육사 선생의 별세를 집안 동생들에게 알리는 내용의 간찰이나 왕산 허위 선생의 유필 등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자료들이 적잖다.
"아버지 고(故) 이동영 교수(부산대 국문학과)가 생전에 전국을 다니며 6형제 관련 자료를 하나둘 모아놓은 덕분이죠. 수소문해서 이원일 선생이 쓴 병풍 보유자를 찾아가 3년간 읍소해서 받아내기도 했죠. 평생 아버지가 열정으로 모은 자료들이죠. 하지만 이를 제대로 보관할 공간이 없어 제 집에 그냥 놔두고 있죠."
대부분 종이라 일반 집에 보관하다보니 아무래도 세월이 흐를수록 훼손되기 마련이다. 이승환 씨가 자료 하나하나를 한지에 붙여 보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이승환 씨는 이를 체계적으로 보관할 만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들 자료를 생가가 자리했던 기념관 주변에 보관하면 가장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요. 기념관 옆에 약간의 공터가 있는데, 그곳에라도 자료관을 만든다면 이 자료들을 기증하고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요. 조그마한 자료관이라도 생겨 자신이 갖고 있는 유품들이 체계적으로 보관된다면 주손으로의 시름을 덜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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