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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품은 영화] 순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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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순수의 시대" 한 장면

1870년대 부유한 명문가 출신이자 수려한 외모까지 겸비한 변호사인 '뉴랜드 아처'는 섬세하고 순진한 '메이 웰랜드'와 행복한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메이의 사촌 '엘렌 올렌스카' 백작 부인이 파경 이후 폴란드에서 뉴욕으로 돌아와서 이혼 소송을 하려 하지만, 뉴욕 상류 사회는 이 스캔들을 불편해한다.

변호사로서 그리고 이제는 친척으로서, 아처는 엘렌을 돕기로 한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엘렌이 이혼하지 않도록, 즉 그녀의 친척들이 공개적인 재판으로 겪는 망신을 막기 위해 그녀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그는 이 여인에게 그만 마음이 흔들린다.

<택시 드라이버>나 <성난 황소>처럼 폭력을 주제로 선혈 가득한 영화들을 주로 연출한 스콜세지 감독이 왜 뉴욕 상류 사회의 예의범절과 절제를 다룬 이 이야기를 선택했을까?사실 이디스 워튼의 대표작인 <순수의 시대>는 스콜세지 감독의 작품들, 특히 <비열한 거리>와 <좋은 친구들>과 생각보다 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순수의 시대" 한 장면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조직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마치 갱스터 조직의 권력 구조처럼 암묵적인 규칙, 명예, 규범, 그리고 상하 관계에 대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워튼은 소설에서 막강한 가문의 우두머리인 '반 데 루이덴' 일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극도로 냉혹하게 묘사한다. 특히 엄격한 가문의 명예와 규범을 어기려는 자에 대한 대가는 몹시 엄중하다.

<순수의 시대>는 1870년대 뉴욕 상류층의 절제와 예의범절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실은 예의범절 뒤에 숨겨진 잔혹함을 드러내고 있다. 주변의 인물들은 모두 도덕과 품위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철저하게 직조된 연극 속에서 순응하고 있을 뿐이다. 스콜세지 감독은 시각적으로 숨 막힐 듯 아름답고 웅장한 시각적 표현 아래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귀족의 규범, 규칙, 관습, 그리고 정장 차림의 만찬과 화려한 파티라는 상류층의 기품 속에 숨겨진 위선은 아처와 엘렌의 순수한 사랑을 짓밟았을까? 아니면 오히려 그 사랑을 가능토록 만들었을까? 경직된 관습들에 대한 반발로 아처는 반항적인 매력을 지닌 엘렌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사랑의 도피라는 꿈결 같으면서도 불가능한 환상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다다르도록 했을까?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순수의 시대" 한 장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순수의 시대'라는 지독한 역설 때문에 아처의 시련은 계속된다. 엘렌과 함께 과감히 도망치지 않는 것이 도덕적 용기인지, 가문에 대한 책임감인지 확신하지 못하던 그는 결국 메이의 임신 때문에 남는 것이 옳다고 결정을 한다. 그렇지만 그것도 결국 비겁함 때문은 아닌지 괴로워하게 된다. 아처는 자신이 메이를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메이가 쳐놓은 교묘한 질서 안에서 순응하며 살았던 것뿐임을 깨닫는 순간 영화적 긴장은 정점에 달한다.

스콜세지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현실 속 우리 또한 죄와 타락의 덫에 걸릴 수 있음을 일깨운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감정적 혼란에 깊이 매료되도록 만들면서도, 결국 그것은 감정적인 폭력이란 것을 확고히 보여주면서, 그것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하는지를 알려준다. 일생 폭력만을 다뤄온 감독이 특히 이 영화를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폭력적인 영화"라고 답한 이유다.

김유현 영화 다큐작가
김유현 영화 다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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