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울진·영덕·경주·포항 등 경북 동해안 4개 시군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울진은 대한민국 최대 원전단지를 보유하고도 지역소멸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영덕은 10년째 원전 유치의 가부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경주는 원자력 연구 전초기지를 자처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고, 포항은 철강에서 신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기가 모자란다.
이 네 지역을 하나의 에너지 생태계로 묶는 '동해안 원전벨트' 구상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넘쳐나는 에너지에도 지방소멸 위기
인구 4만6천여명의 작은 도시, 경북 울진군은 앞으로 대형원전 10기(설비용량 11.5GW)가 가동되는 세계 최대 원자력발전단지가 될 전망이다.
울진 지역 원전만으로도 서울시 연간 전력 소비량의 약 40%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막대한 에너지 생산에도 불구하고 울진은 여전히 지역소멸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울진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의 상당량은 초고압 송전선로를 통해 국가 전력망으로 보내져 전력 소비가 가장 많은 수도권 지역의 산업·일반 전력으로 사용된다.
경주는 현재 월성원전(2·3·4호기)과 신월성원전(1·2호기) 등 5기가 가동 중인 국내 원자력 발전의 핵심 거점이다.
국내 유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 위치한 만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도 경주에 있다.
그럼에도 경주 역시 2020년 25만3천502명에서 지난해 24만4천769명으로 5년간 9천447명의 인구가 감소하는 등 청년층의 도시 유출이 고착화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2025년 12월 경주시를 전국 18개 인구감소관심지역 중 하나로 지정했다.
포항은 경북에서 인구 규모가 가장 크지만 위기의 깊이 또한 가장 깊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포스코의 평균 철강업 이익률은 2021년 13.9%에서 2024년 2.8%로 급락했고, 중국산 비중은 내수 전체의 60%까지 확대됐다.
정부는 포항시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 긴급경영안정자금, 지방투자촉진보조금 우대 등을 통해 국가기반산업 부흥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철강 위기의 빈자리를 채우는 신산업들은 예외 없이 전기를 대량으로 소비한다.
산업부 전력공급계획에 따르면 포항 2차전지특화단지 중 영일만산업단지는 220㎿, 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는 644㎿의 추가 전력이 각각 필요하다.
포스코 수소환원제철(하이렉스) 단지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약 114만MWh, 최대 부하는 약 17만kW 규모로 추산되며,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와 바이오특화단지까지 더해지면 포항의 전력 수요는 현재 추산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3년간 75.8% 오른 전기요금…시름 깊어지는 산업 현장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1분기 1㎾h당 105.5원에서 2024년 4분기 185.5원으로 3년 새 75.8% 인상됐다.
탄소배출권 문제로 기존 석탄고로에서 전기로나 수소환원제철을 꾀하는 상황에서 1원의 차이는 수억원의 비용 격차를 만든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난 3월 발표한 '계시별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안'도 새로운 변수다.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기존 중간부하(오후 6~9시) 시간대를 최대부하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며, 24시간 연속 가동하는 철강업계로서는 부담이 고스란히 남는다.
국회는 산업위기지역 산업용 전기에 대한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면제를 골자로 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안과 철강산업용 전기에 대한 선택공급약관 작성을 담은 개정안을 각각 발의 중이다.
◆에너지 고속도로, 경북 동해안의 미래
전기요금 직접 지원에는 상계관세(CVD)라는 복병이 있다.
상계관세란 수출기업이 정부 보조금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고 판단되면 수입국이 그 보조금액만큼 추가로 부과하는 특별 관세를 말한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5월 포스코에 상계관세 3.7%를 확정한 바 있어 전기요금 지원이 정부 보조금으로 간주될 경우 대미 수출에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에너지생산지역별 차등요금제, 탄소중립·에너지 효율화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 등 우회적 감면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결국 경북 동해안 지역의 문제는 하나의 구조적 모순으로 귀결된다.
울진에서 전기가 남아돌아도 포항으로 보낼 선로가 부족하고, 경주에서 연구가 이뤄져도 그 성과를 담을 소비 인프라가 없다.
영덕은 원전 부지가 준비돼 있어도 정부의 확답이 없다.
각자 한 조각씩 가지고 있지만 퍼즐이 맞춰지지 않는 상태다.
이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 경북도가 추진하는 것이 '에너지 고속도로'다.
2032년까지 6조8천억 원을 투입해 울진~포항 175㎞ 구간에 해저 초고압직류송전(HVDC)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원전 16기를 보유한 현재의 기반 위에 신규 원전 유치를 통해 울진~영덕~포항~경주를 잇는 '동해안 원전벨트'를 완성하고, '경북형 K-SMR 수출 패키지' 등 글로벌 원전 시장 선점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원전 기반의 무탄소 전력이 포항 산단에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전기요금 감면이 구조적 원가 경쟁력으로 자리 잡는다면 투자 결정의 방정식이 바뀐다.
생산(울진·영덕 원전)~연구개발(경주 원자력 클러스터)~소비(포항 산단)로 이어지는 초광역 에너지 산업 생태계가 완성되면 소멸 경고등이 켜진 경북 동해안이 다시 한번 대한민국 산업 지형을 바꾸는 출발지가 될 수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투표함 지킨 시민 저항을 '소요'라고 폄훼한 배현진
최강욱 "영남 유권자는 강도와 가까워진 인질... 스톡홀름증후군 걸려"
[단독] 배현진이 이 시국에 일본을 갔다고? 진짜로?
'승부처' 죄다 틀렸다…'진보 편향' 출구조사 결과, 오류 원인은[금주의 정치舌전]
[현장] 잠실 인파는 '시위대'일까 '시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