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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신중언] 국민 참정권 흔든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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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

신중언 사회부 기자
신중언 사회부 기자

6·3 지방선거 본투표에서 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장기간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미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투표를 하는 상황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심지어 장시간 대기를 할 여유가 되지 않아 투표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린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현장의 혼선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순 없다. 국가기관의 준비 부족으로 국민의 기본 권리인 참정권이 침해됐으며 선거제도의 신뢰마저 훼손됐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지 못한 것은 민주주의를 뿌리째 파괴하는 일과 다름없다.

이 같은 참사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는 행정상의 과실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투표용지를 전체 선거인 수의 50% 분량만 인쇄해 투표소에 비치했는데 일부 투표소에 예상치를 웃도는 유권자가 몰리면서 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국민 세금 낭비를 걱정하는 선관위의 갸륵(?)한 뜻을 받아들이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점이 너무 많다. 선거 당일 오후 1시부터 곳곳에서 용지 부족 신호가 감지됐음에도 대응하지 못한 무능함과 유권자의 상당수가 기권할 것을 전제한 안일함을 드러낸 선관위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모두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진상규명위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선관위가 자정 작용을 상실한 기관이라는 사실을 몇 년간 지속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선관위는 끊임없이 신뢰를 갉아먹었다. 2020년 총선에선 투표용지에 QR코드를 인쇄해 선거법 위반 논란을 빚었다. 2022년 대선 사전투표에선 코로나19 확진자 등의 투표 과정에서 기표가 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지 않고 바구니와 쇼핑백에 담아 '소쿠리 투표' 비판을 받았다. 이듬해엔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터졌고, 감사 과정에서는 수백 건의 채용 비리와 규정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선관위는 '독립적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외부 통제를 거부해 왔다. 감사원이 '채용 비리'를 감사하자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도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선관위 손을 들어줬다.

조직 문화 역시 우려스럽다. 선거를 앞둔 시기마다 휴직자가 급증하는 현상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올해도 선관위는 내부적으로 불필요한 휴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거 관리가 조직의 존재 이유인 기관에서 선거 시기 업무 공백이 반복된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는 물론 특검을 통해서라도 선관위에 제기된 각종 의혹을 규명해야겠지만, 선관위 자체에 대한 개혁도 필수불가결하다.

먼저 선관위의 헌법상 독립성은 유지하되, 운영 과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 장치는 강화해야 한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감사 시스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내부 감사 조직을 확대하고 감사 결과와 운영 현황은 국회가 다시 점검하는 방식으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법관의 선관위원장 겸직 관행 역시 재검토해야 한다. 중앙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 시·도 선관위원장은 지방법원장이 맡는 관행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선거 관련 분쟁이 결국 법원으로 가는 현실을 고려하면 중립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헌법과 법률은 위원들 간 호선을 규정하고 있다. 이제 선관위의 방패막이가 되는 관행은 버리고 원칙을 따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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