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박사이자 동부민요 명창. 좀처럼 접점을 찾기 어려운 두 분야를 평생 함께 걸어온 사람이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투타를 겸업하는 오타니 쇼헤이의 별명인 '이도류(二刀流)'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 박수관 동부민요 명창이다.
원래 이도류는 일본 검술에서 양손에 각각 다른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검법을 뜻한다. 오늘날에는 전혀 다른 두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사람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널리 쓰인다.
박 명창은 공학과 국악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모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스스로를 "직업은 공업인이고, 본업은 소리꾼"이라고 소개한다. 산업 현장에서는 첨단 정밀기술을 연구하는 공학자이지만, 무대에 오르면 동부민요의 맥을 잇는 명창으로 변신한다.
그는 한양대 산업공학 석사 시절인 1990년 4월 20일 조선일보 1면에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대통령상 수상자로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또,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구에 '갑우정밀'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지역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기구한 운명, 유복자로 태어난 기인(技人)
박 명창의 삶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경남 김해읍 전하동에서 2남 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세상을 떠났다. 유복자로 성장한 그는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기를 바랐지만, 어린 박수관의 마음은 늘 소리를 향해 있었다.
동네에서 상여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상여소리를 하는 소리꾼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으며, 동네 장터에서 각설이패의 한바탕 놀음에 관심이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그의 귀는 삶의 소리와 민중의 가락을 향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막내 아들의 소리꾼 기질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초등학교 6학년 때, 무협지 같은 기인(奇人)을 만났다. 그가 바로 동부민요의 창시자라 불리는 김로인(金路人). 스승 김로인은 소리를 좋아하고, 잘 하는 어린 아이를 보고 기특하게 여겨 소리의 깊은 내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백발가부터 시작해 전쟁가, 동해 뱃노래 등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던 동부민요의 진수를 전했다.
소리뿐만 아니라 삶의 철학도 함께 남겼다. 김로인이 제자에게 남긴 가르침은 세 가지였다. 첫째, 자연에 가깝게 노래하라. 둘째, 목이 아닌 가슴으로 노래하라. 셋째, 남 앞에 나서지 마라. 모든 것을 전한 스승은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그는 "김로인을 만난 건, 지어낸 얘기 같을 정도로 영화보다 더 극적"이라며 "이제 제가 그 동부민요를 체계적으로 만들고, 전수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전국 최장수 문화원장 "서구에 문화의 향기"
대구광역시문화원연합회 회장이기도 한 박 명창은 지역 문화 발전에도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대구 서구문화원 원장을 14년째 맡고 맡아, 기초자치단체 문화원장으로는 전국 최장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임기 후에는 자연인 소리꾼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재임 기간 내내 서구에 문화의 향기를 전파하겠다는 생각 뿐이다.
박 명창은 밤낮없이 서구 주민들에게 멋진 공연을 향유할 기회를 줄 수 없을까 고민한다. 이번달 16일에는 서구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을 초청해 '잎은 피어 청산되고, 꽃은 피어 화산되니' 공연을 선사했다. 또, 다음달 5일에도 대한민국 국보급 임동창 풍류 피아니스트를 모시고 '내 사랑 대구, 風流'라는 제목으로 토크 콘서트를 연다.
서구문화원장으로서 가장 큰 역할은 자신의 인맥으로 저비용 고효율의 공연을 기획하는 것이다. 물론 동부민요 무형문화재인 본인의 재능기부는 말할 것도 없다. 임동창 명인의 초청 대강연 역시 막역한 관계인지라, 정상적인 출연료를 초월해 성사시켰다. 그는 "임기를 마친 뒤에도 주민들의 문화 향유권 확대를 위해 계속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상복 터져, 평생 한번 받기 힘든 상 휩쓸어
박 명창의 공장인 갑우정밀 뒷편 야산에는 동부민요 전수관이 멋드러지게 자리잡고 있다. 건물 안에 들어가면, 각종 상들이 사방 벽면 뿐 아니라 천장까지 잘 전시되어 있다. 누구라도 이를 둘러보면, "이 분의 정체성은 뭔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과학자 & 기업인, 문화예술인으로 걸어온 그의 삶이 그대로 기록돼 있는 셈이다.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대통령 국민포장, 서울전통공연예술 경연대회 대통령상, 석탑산업훈장,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대사, 해외에서 받은 각종 훈장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과학자 & 공학도이자 소리꾼. 이질적인 듯 보이는 두 분야에서 그는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대한민국 최고이자 세계로 뻗어가는 문화 기업인으로 우뚝 섰다고 요약하면 될 듯하다. 그는 "지인들이 저에게 '기인'이라고 하는데 "제가 그런가요"라고 반문하며, "소리꾼의 재능을 갈고 닦고, 기업인의 제 본분을 다한 것"이라고 겸손했다.
3년 전부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는 현재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위촉한 첨단과학 및 나노정밀기기 연구분야의 방문학자(Distinguished Visiting Scholar)로 위촉되어, 관련 공동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박 명창은 마지막으로 아내 장은실 여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는 늘 오늘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여보,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박 명창의 소리와 공학, 전통과 현대,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삶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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