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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의 두발 산책] 도주 중 달콤한 휴식터… 왕건과 지명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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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랑골 계곡 곳곳에 밝혀둔 촛불들. 매일신문 DB.
안지랑골 계곡 곳곳에 밝혀둔 촛불들. 매일신문 DB.

급박한 대피길이었지만 숨을 돌릴 순간도 있었다. 왕건은 견훤의 추격을 피해 산자락 곳곳에 몸을 숨기며 잠시나마 휴식을 취했다. 그 흔적은 지금도 대구 곳곳의 사찰과 지명에 전설처럼 남아 있다.

◆ 은적사

왕건은 걷고 또 걸어 지금의 남구 봉덕동 일대까지 이르렀다. 패전의 충격에 며칠째 이어진 도주로 몸과 마음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몸을 숨길 곳이 필요했다.

주위를 살피던 왕건의 눈에 대나무숲 너머 작은 굴 하나가 들어왔다. 큰 바위 두 개가 비스듬히 겹친 틈에 만들어진 좁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축축하고 비좁았지만 처지를 가릴 형편은 아니었다. 왕건은 몸을 웅크린 채 견훤의 군대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마침 굴 앞에 거미가 실을 늘어뜨리며 내려왔다. 이후 자신의 집을 짓고자 열심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건은 거미의 집 짓기를 방해하지 않고 계속 숨을 죽였다. 때마침 안개도 짙게 끼기 시작했다.

잠시 뒤 굴 앞을 지나던 견훤의 군사들은 거미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안으로 사람이 들어갔을 리 없다고 판단했다. 굴 안을 확인하지 않은 채 발길을 돌렸고, 왕건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굴 안의 물을 마시며 사흘 동안 숨어 지냈다고 한다.

안일사 옆에 마련된 굴. 왕건이 다녀가
안일사 옆에 마련된 굴. 왕건이 다녀가 '왕굴'이 됐다.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제공.

◆ 안일사

굴에서 벗어난 왕건은 도중에 만난 작은 샘에서 갈증을 달랬는데, 이 샘이 오늘날 '왕정'으로 전해진다. 왕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작은 사찰이 있었다. 사찰 주변을 절벽이 두르고 있고, 숨을 만한 굴도 있어 안전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비로소 몸을 누이고 쉬었다고 해 절 이름도 '안일사'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안일사에서 조금 더 가면 '임휴사'가 나온다. 왕건이 대구를 거의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마음 놓고 쉬어 갔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팔공산 일대가 까마득히 멀어진 뒤여서다. 잠시 숨을 고른 왕건은 이후 성서와 달성군 일대를 거쳐 성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알쏭달쏭 안지랑에 얽힌 이야기

왕건의 도주와 관련해 안지랑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왕건이 안일사 인근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 견훤이 바로 코앞까지 추격해 왔다. 견훤을 '지렁이의 아들'이라 부르던 설화와 연결해, '왕지렁이'가 '안지랑이'로 변했다는 해석이다. 또 왕건이 이곳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머물다 떠났기 때문에 '안지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이 같은 설화가 정설은 아니다. 안지랑의 맑은 계곡물을 마시면 기운을 되찾아 걷지 못하는 사람도 일어설 정도였다고 해, '앉은뱅이'에서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도 함께 전해진다.

왕건이 3일 동안 머물렀다는 전설이 담긴 은적사의 모습. 정두나 기자.
왕건이 3일 동안 머물렀다는 전설이 담긴 은적사의 모습. 정두나 기자.

◆ 지금의 은적사

고려로 돌아간 왕건은 거미가 줄을 치던 굴로 돌아왔다. 고승 영조대사에게 굴 근처에 절을 지어달라고 명령했다. 왕건은 자신이 숨었다는 의미를 담아 '은적(隱蹟)'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은적사는 앞산공원 깊숙한 곳에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산공원 입구에서 20~30분은 걸어야 한다. 그 전까지 비교적 매끄럽게 닦여 있던 땅은 앞산 케이블카 인근부터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이전보다 훨씬 우거진 풀을 구경하며 깎아지듯 높게 솟은 언덕을 올라야 한다.

돌로 된 옹벽 위에 은적사가 고고하게 서 있다. 그다지 큰 절은 아니지만, 깊은 역사를 지닌 절이다. 입구 근처를 맴돌자 은은한 향냄새가 풍겨왔다. 오래된 절에서 풍겨오는 엄숙한 분위기에 절로 숨을 죽이게 됐다.

대웅전 왼쪽에는 왕건이 몸을 숨겼다는 굴이 남아 있다. 여름철이라 우거진 나무와 달려드는 벌레를 피해 잠시 구경해볼 수 있다. 굴 안에는 작은 불상이 왕건이 머물렀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왕건의 도주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도시의 일부로 남아 이어져왔다. 역사는 책 속에서만 남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지명과 매일 걷는 길 위에도 천 년 전 한 왕의 발자취가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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