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남매지근린공원 경산보건소 뒤편에는 작은 시비 하나가 서 있다. '아직도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이 시비는 교육자이자 언론인, 시인, 향토사학자로 활동하며 민주주의와 정의를 노래했던 서지 김윤식(1928~1996)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1960년 2월 28일,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패에 맞서 대구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2·28 학생의거'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학생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은 김윤식 선생은 저항시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열망을 담아내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고, 이후 3·15 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널리 회자됐다. 선생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4·19 혁명 공로훈장을 받았으며, 오늘날에도 민주주의 정신을 노래한 향토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요즘처럼 사회가 혼란스럽고 갈등이 깊어질수록 선생의 삶과 정신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선생의 생가를 직접 찾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생가는 경산시 용성면 덕천길 22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의 안내석에는 선생의 생애와 2·28 학생의거와의 인연, 대표 작품,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활동 등이 자세히 소개돼 있었다. 본채 전시공간에는 육필 원고와 사진, 각종 유품이 정갈하게 전시돼 있었고, '미강갤러리'라는 이름의 공간에는 청마 유치환, 박목월, 조지훈 선생 등 한국 문단의 거목들과 함께한 사진과 자료들이 남아 있었다.
전시되지 못한 유품들은 별도의 서고에 보관되고 있었으며, 또 다른 공간에는 한의학을 공부했던 선생의 부친이 남긴 동의보감과 한의학 서적들이 정리돼 있었다. 경산학연구원 연구실과 전통 발효 강의실도 함께 운영되고 있어, 생가가 단순한 기념 공간을 넘어 지역 문화와 교육을 잇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생가를 둘러보는 동안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오래된 시설은 곳곳이 노후화돼 있었고, 낡은 목재 사이로 흰개미가 기어 다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100년의 세월을 간직한 이 생가는 경산의 근현대 문화유산이자 민주주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역사 현장이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점차 훼손되고 결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문화유산은 오래된 건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시대정신과 사람들의 삶까지 함께 보존하는 일이다. 김윤식 선생의 생가 역시 우리 지역의 역사와 민주주의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교육의 장으로 더욱 체계적으로 보존되고 활용될 필요가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역사회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생이 남긴 뜻처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불의에 맞서는 용기는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가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특히 미래 세대가 이러한 정신을 잊지 않고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생가를 나서며 다시 한 번 김윤식 선생의 삶과 시를 떠올렸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정의를 외면하지 않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경산을 찾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이곳을 방문해 우리 지역이 품고 있는 소중한 역사와 정신을 직접 느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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