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어린이청소년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선임을 두고 아시테지((사)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를 비롯해 연극계 협·단체가 단일대오 하는 분위기다. 공연예술계는 임명을 철회하고 새로운 인사를 선임할 때까지 연대 서명과 시민 호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행동을 이어간다고 예고하고 있다.
국내 어린이청소년연극의 틀을 세운 김우옥 박사(한예종 초대 연극원장)도 "내가 청소년연극에 몸담은 지 40년이 넘었는데 들어보지 못한 분이 예술감독이라니. 아동청소년 연극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분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흘렀다."라며 참담한 심정을 SNS로 공유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됐던 것도 사실이다. 삐걱거리는 엇박자 인사 논란은 시간을 돌려보면, 한 배우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장 내정설이 돌면서 이상한 인사 논란에 불을 댕겼다. 배우 장동직이 국립정동극장 이사장에 임명되면서부터 문화예술계에서는 정치적 보은 인사에 대한 전문성과 공공기관 운영 경험을 둘러싼 문제 제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코미디언 출신이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에 임명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공공기관 임원의 결격 사유가 될 수는 없고 시비 걸 생각도 없다. 정치적 보은 인사는 그렇게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문화예술 현장을 읽어낼 수 있는 적임자인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전문성과 인사검증이 문화예술계 눈높이에 맞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문화계 수장의 입을 통해 들려온 것은 "이유 있는 인사… 잘할 거라 믿어"였다.
"잘할 거라 믿어서였을까." 예술의전당 사장에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장한나가 임명된 것을 두고도 세계적인 음악가로서의 명성과는 별개로 거대한 복합문화예술기관을 경영하고 행정을 총괄하는 능력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었다
.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 박혜진 인사를 둘러싼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문화예술계의 부자연스러운 인사 논란으로 친 정부 성향이 강한 문화연대 등 65개 문화예술단체와 개인 794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문화예술 분야 공공기관장 인사 원칙에 '달라질 결심'을 촉구하며 비판했다. 예술계 현장과 예술가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희한한 인사, K-컬처 강국의 세계화를 위한 장르별 전문위원 선임까지 "잘할 거라 믿는 인사"의 굳건한 원칙만큼은 흔들리지 않아 보였다.
국립 어린이청소년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 인사도 마찬가지다. 선임자는 지방자치단체 산하 광명문화재단 대표를 비롯해 공공기관의 문화 관련 업무를 경험했다. 극단 활동 경력도 포함돼 있다. 경력 사항만 놓고 보면 특별한 결격 사유가 드러나지 않아 보인다. 문화 행정 전문가로 평가할 여지도 있다.
여러 기관을 거치며 정치권과도 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보인다. 노골적인 보은 인사라고 단정하기에는 정치적 무게감이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경력을 보면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럴 수도 있고, 코드인사도 필요하다. 핵심은 선임자가 적임자인가 하는 점이다
국립극단은 서계동 이전 이후 장기적으로 어린이 청소년연극에 관심을 가져왔다. 연구소 형태로 출발해 전문가들이 수년 동안 작품을 개발했고,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연도 꾸준히 선보였다. 연극계 현장에서도 어린이청소년 연극을 국립극단 체계 안에서 독립적이고 지속적인 영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돼왔다.
다행히 전임 문화계 수장 시절 국립 어린이청소년 극단 체계가 만들어졌다. (사)아시테지도 그동안 어린이청소년극의 독립적인 제작 기반과 국립극단 체계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런 점에서 국립극단 출범은 오랫동안 현장에서 축적되어온 창작 기반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몇 편의 제작 경험과 예술적 행정만으로 밀어붙인다고 되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만큼 이 장르의 예술성은 일반 연극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부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동유럽의 경우 수십 년 경력의 배우, 은퇴할 나이의 노배우나 평생 어린이청소년연극을 창작해온 전문가들이 극을 만들고 개발해 오고 있다.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쉽다는 생각,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어린이들의 꿈을, 청소년의 미래를 짓밟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어린이 청소년 문제만큼은 행정력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작품을 만들고 관객을 만나며 축적한 예술적 전문성과 이 장르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필요한 자리다. 국립 어린이청소년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은 조직을 관리하는 행정 책임자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화행정 경험이 중요한 자산일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 현장의 전문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선임자의 어린이 청소년연극에 대한 전문성과 예술적 역량을 어떤 방식으로 평가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행정 경험으로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절차의 투명성과 기준의 설득력이 제시돼야 한다. 여기에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연극계 예산과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축소와 통합을 가시화하는 문화예술진흥법 개정 문제를 둘러싸고도 연극계는 정부의 K-컬처 세계화 정책 때문에 순수예술 지원정첵은 찬밥 신세로 전락한 기분이라고 토로한다.
K-컬처의 원류이자 대표적인 기초예술 장르인 연극 분야만 정작 정책과 예산에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세계화의 K-컬처를 외치면서도 뿌리가 되는 기초예술의 생태계가 흔들린다면, 지속가능성도 장담할 수 없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의심에서 시작한다. 형사 해준은 한 남자의 죽음을 추적하면서 그의 아내 서래를 의심하고 관찰한다. 영화 앵글은 두 사람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의심은 믿음으로 흔들리고, 형사로서의 판단과 한 인간으로서의 감정 사이의 경계도 무너지는 심리를 담아낸다.
결국 '헤어질 결심'은 사랑하기에 헤어져야 하는 결심이다. 사랑하지만 함께할 수 없고, 사랑하기에 헤어질 수밖에 없는 비극이 '헤어질 결심'에 담겨 있다. 국립 어린이청소년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인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내 편, 정치적 성향 따지지 말고, 아프더라도 문화예술계가 납득할 수 없는 인사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달라질 결심'이 필요할 때다.
문화계 인사철만 되면 들려오는 "이유 있는 인사… 잘할 거라 믿어"보다 "달라질 거라 믿어"라는 말을 듣고 싶다. 수많은 예술가와 창작자, 문화예술계 현장을 납득시킬 수 없는 잘못된 인사 관행과 이제는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달라질 결심'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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