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창간 80, 격동 80] 유신의 종말, 신군부의 시작… 전두환과 하나회의 반란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1979년 12월 13일 매일신문 1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 10·26 사건 피의자인 김재규(전 중앙정보부장)와 관련돼 12일 밤 연행됐다는 내용이다. 매일신문 DB.
1979년 12월 13일 매일신문 1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 10·26 사건 피의자인 김재규(전 중앙정보부장)와 관련돼 12일 밤 연행됐다는 내용이다. 매일신문 DB.

김재규의 총성은 유신정권의 종말을 알렸다. 시민들은 장기 집권자의 사망으로 민주화가 이뤄질 거라 꿈꿨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격동 속에서 기회를 엿본 자, 전두환의 등장 탓이었다.

◆ 하나회의 음모

1979년 겨울, 최규하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계 기관장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빈 대통령의 자리를 메꿔야 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인 최규하는 먼저 유신 헌법에 따라 일단 대통령을 선출하기로 한 뒤,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후 그는 긴급조치 9호 등 유신 헌법의 흔적을 지워나가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때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대통령의 죽음을 수습하는 합동수사본부(합수본)의 장을 꿰찼다. 합수본은 헌병과 검찰, 경찰과 중앙정보부 등 다양한 조직을 조정·감독하는 기관이다. 박정희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여러 기관의 협조가 필요해지자 마련됐다. 전두환은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군과 검경, 중앙정보부까지 모두 주무를 힘을 쥔 셈이었다.

당시 군 내부의 권력 정점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쥐고 있었다. 그는 계엄사령관으로서 대통령 사망에 연루된 중앙정보부와 대통령 경호실의 몸집을 줄이는 한편, 군 체제 개편에도 나섰다. 그는 이미 전두환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밑에는 비밀 사조직 '하나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다.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중간조사 경위를 발표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중간조사 경위를 발표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 두 번째 군사 반란

정승화는 하나회 수장을 동해경비사령부로 발령시키고, 그 권력을 빼앗으려 했다. 전두환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하나회를 불러들여 정승화를 불법 연행하기로 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의 손에서 출발했다. 영남 출신인 동향끼리 모여 고민을 털고 술도 마시며 우정을 다졌다. 이들은 6개월만 교육받던 과거 육사 기수와 달리, 최초로 4년의 정규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넘쳤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이들이 뭉쳐야겠다고 생각한 하나회는 후배들을 영입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회는 1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 됐다.

이들은 정승화가 10.26 사태를 방조했다는 이유로 체포하기로 했다. 전두환은 "김재규와 함께 있으며 사건에 동조했다"거나 "돈을 받은 정황이 있다"고 죄를 뒤집어 씌웠다.

12월 12일, 거사 날이 밝았다. 전두환의 지시하에 보안사와 수도경비사령부가 움직였다. 이들은 예고도 없이 공관에 들이닥친 후 체포를 통보했다. 손에는 실탄이 장전된 총이 들려 있었다.

이상을 눈치챈 경호원과 군인들이 뒤늦게 들이닥쳤다. 반란군은 저항하는 이들에게 서슴없이 총을 겨눴다.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쓰러지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정승화는 결박된 채 눈앞에서 부하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끌려간 정승화는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육군참모차장 등 수뇌부는 이를 제지하고 나섰지만 이미 늦었다. 육군본부, 국방부에도 반란군이 점령한 상태였다. 결국 군의 지휘권은 반란군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

12·12 군사 반란으로 서울 광화문에 무장병력이 진주해 있다. 매일신문 DB.
12·12 군사 반란으로 서울 광화문에 무장병력이 진주해 있다. 매일신문 DB.

◆ 천하를 주무르는 전두환

수뇌부를 모두 자신의 손아귀에 둔 뒤, 전두환은 정승화 체포 사후 재가를 받았다. 최규하는 재가를 꺼리다가도, 국방부장관의 설득에 넘어가 체포동의안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다. 단 10시간 만의 일이었다. 체포의 명분까지 확보했으니 쿠데타는 대성공인 셈이었다.

전두환은 반란을 함께한 이들에게 보상을 건넸다. 하나회 회원들을 수경사령관, 특전사령관으로 취임시켰다. 이듬해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하나회의 승승장구가 이어졌다. 대통령 비서실과 군 수뇌부에서 일하고 싶다면 무조건 하나회 출신이어야 했다.

18년간 이어진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지만 기대했던 민주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12·12 군사반란을 계기로 신군부가 권력을 잡았고, 또 다른 군사정권이 시작됐다.

전두환 대통령이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헌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증진에 힘쓸 것을 선서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전두환 대통령이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헌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증진에 힘쓸 것을 선서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최서원(전 최순실)씨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어 딸 정유라씨가 병원비와 치료를 위한 간병인 필요성을 알렸고, 최씨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대구지역 ICT기업들이 베트남 다낭 스마트시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며, 다낭 혁신창업지원센터(DISSC)에서 D2D 비즈니스라운지 이전식...
오는 10월 2일 출범할 중대범죄수사청의 특례임용 신청이 마감되었으나, 검사와 검찰수사관의 지원이 저조해 초기 인력 확보에 우려가 커지고 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축소 지시로 일본은 내년도 방위비를 사상 최대인 10조 엔으로 책정하며 대일 압력에 대비하고 있으며, 이..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