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8>신품종으로 소비자를 사로잡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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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호 청년농부, 초등학생 때부터 농업을 진로로 선택
2024년 경북농기원서 개발한 포도 신품종 레드클라렛 식재, 내년 본격 출하

차은호 씨가 포도 하우스 안에서 활짝 웃고 있다.
차은호 씨가 포도 하우스 안에서 활짝 웃고 있다.

청년농업인 차은호(27) 씨는 경북대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2021년부터 경북 영천시에서 포도(3천967㎡)와 자두(4천959㎡) 농사를 짓고 있다. 농장명은 '셋째날농원'이다. 성경 창세기에 적힌 내용(꽃과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신 말씀 셋째날에 과일 등 창조)에 착안한 이름이다.

농업으로의 진로는 초등학생 때 정한 것이다. 조부모님대부터 농사에 종사해왔기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고 중학생이 되고선 일부 참여도 했다. 대학 시절에는 과수학 실험실에 소속돼 전반적인 과수재배 생리를 배웠고 졸업 후 농사 계획도 세워나갔다. 현재는 대학원에 다니며 과수농사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2024년 식재한 포도 신품종
2024년 식재한 포도 신품종 '레드클라렛'. 우리나라 기후에 적합하고 맑은 색과 얇은 껍질, 품종 고유의 향과 고당도가 특징이다. 차은호 씨 제공

◆2년 전 신품종 레드클라렛 도입, 내년 출하

집안에서 포도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1988년으로 현재 그가 재배하고 있는 품종은 샤인머스켓과 레드클라렛이다. 앞서 2021년 유럽종 포도인 블랙사파이어를 노지 비가림(1천983㎡ 규모)에 심고 3년 간 재배했지만 완전 실패하고 말았다. 여름철 강수량이 집중되는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심각한 웃자람과 열과, 동해 피해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미국종과 유럽종 포도의 특성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유럽종은 미국종에 비해 수분과 비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도장성(가지가 웃자라는 성질)이 강했다.

이런 과정을 겪고 새 품종을 찾던 중 경북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레드클라렛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신품종은 우리나라 기후에 적합하게 개발됐을 뿐 아니라 블랙사파이어 재배에서 문제였던 열과도 거의 없었다. 여기에 숙기가 8월말에서 9월초여서 추석 전에 출하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아무래도 여름이 넘어가면 소비자들이 포도를 덜 찾기 때문이다. 그렇게 2024년 레드클라렛을 첫 식재했다.

다행이 레드클라렛 재배방식은 거봉이나 샤인머스켓과 거의 동일해 기술 습득과 시행착오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 본격 출하는 내년에 할 예정이다. 올해는 아직 나무가 어린 탓에 외관상 고품질의 포도를 생산하지 못했다. 하지만 샤인머스켓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레드클라렛의 맛과 외관을 본 후 벌써부터 구매의사를 보이고 있어 선호도는 어느 정도 확인이 된 것 같다.

역시 과일은 맛이다. 30년 이상 포도를 재배한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도 품종 고유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하고 트랜디한 마케팅에 능숙하진 못하지만 맛과 균일한 품질을 오랜 기간 유지해온 것이 수많은 고객들이 잊지 않고 해마다 찾아준 비결이었던 것이다. 그 또한 이런 아버지의 철학을 이어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2학기부터 대학원에 진학에 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포도과원에 잘 익은 레드클라렛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차은호 씨 제공
포도과원에 잘 익은 레드클라렛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차은호 씨 제공

◆실수와 위기로 다진 과수농사 노하우

농사에 본격 입문한 후 영농을 포기하고 농촌을 떠날 뻔한 사건이 세 번 있었다. 블랙사파이어를 심고 3년차에 폐원한 것, 2023년에 심은 자두 200주 묘목 품종이 잘못돼 2025년 뽑아낸 것, 2년 키운 나무가 날아간 경험 등이 그것이다. 이때 정신적, 물질적으로 상당히 힘들었지만 다행히 나머지 절반 가량의 품종은 괜찮았고 정책자금의 원금 상환 기간도 한참 남아 있어 재정적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지난해에도 한번 더 위기가 있었다. 한 묘목업체에서 자두 묘목을 구입해 식재했는데 품종이 또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1년차에 바로 뽑아내고 올해 새로 심어 1년의 시간만 날려버린 것에 안도하고 있다.

이런 시련의 과정을 통해 배운 것도 참 많다. 이리저리 넘어지면서 자신만의 과수농사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물론 앞으로 또 어떤 위기가 올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잘 대처해나갈 자신이 있다. 특히 내년부터 본격 출하할 레드클라렛은 지금까지의 고생을 일부 보상해줄 효자 품종이 아닐까 기대하고 있다. 맑은 색과 얇은 껍질, 품종 고유의 향과 고당도 등의 매력으로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도잎 사이로 차은호 씨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포도잎 사이로 차은호 씨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묘목 품종 사고 보상해줄 보험정책 필요

후계농업경영인 융자로 농지 구입을 했고, 수익이 일체 나지 않는 초기 3년간은 영농정착지원금으로 영농자금 및 생활비를 충당했다. 또 영천시 지원사업인 아이디어콘테스트를 통해 자두 시설하우스를 설치했고, 경북농업기술원과 영천시의 포도 신품종 지원사업으로 레드클라렛을 식재했다. 이렇게 매 시기 결정적인 순간마다 필요한 지원사업들의 도움을 받아 영농기반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만 시설자금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관련 융자나 지원사업 확충을 고대하고 있다.

또 하나는 묘목 품종이 잘못되는 사고를 두 번이나 겪으면서 영세한 묘목업체들의 품종을 관리할 정책적 수단이 있으면 좋겠고 이에 더해 품종 불량 사고로 인한 피해 보전 및 보험정책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현재는 보상을 받는다 해도 묘목값 수준이고, 시간과 노동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면 묘목업체는 민사 소송으로 가자며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 차원에선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포기하게 되는데 자신도 현재 그런 상황이라 이 부분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이 절실하다.

과수농사를 고민하는 청년들을 향해선 "우선 재배기술을 탄탄히 익혀 안정적인 생산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과수는 3년간 나무를 키워야 하는데다 최대한으로 수확이 시작되는 시기가 5년 후이기 때문에 작목에 맞게 미리 수입구조를 계산해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신기술과 신품종에 대한 도입은 품목과 기술을 충분히 익힌 뒤 도전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되게 일을 하면서도 항상 즐겁고, 잠이 들 때는 아침에 눈 떠 밭에 가는 것이 기대가 된다"며 "농업이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되면 이렇지 못할텐데 이것이 농업의 매력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차은호 씨가 레드클라렛 생육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차은호 씨가 레드클라렛 생육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종자강국 경북, 신품종 육성으로 농업 경쟁력 키운다〉

'농업의 시작은 종자다'.

옛말에도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듯 농업에서 종자는 기본 산업이라 할 정도로 중요하다. 현재 모든 산업에 반도체가 중요한 부분이듯 농업에 있어 '종자'가 그렇다. 우수한 종자가 곧 농산물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적지 않은 종자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며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자적인 우수 신품종을 개발하고 종자 주권을 확립하는 것은 우리 농업의 생존이자 미래 청년농업인들을 위한 필수 과제다.

더욱이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농업현장에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고 소비자의 선호를 반영한 신품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차별화된 품질과 상품성을 갖춘 신품종은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런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경북농업기술원은 신품종 육성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현재 벼, 콩, 딸기, 포도, 오미자 등 총 215품종을 품종보호 등록하며 국내 품종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이 중 콩은 지난해까지 기능성 검정콩 빛나두를 비롯 4품종을 개발했고 올해는 기계화에 적합한 내탈립계를 개발한다. 이들 신품종은 안동, 구미, 상주, 경주 등에 지역별브랜드화 특화단지를 육성해 보급할 계획이다. 또 2030세대에게 선호도가 높은 초당옥수수 소당옥, 청밀옥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과수 분야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포도는 레드클라렛, 골드스위트, 글로리스타 등 8품종을 개발했다. 2023년 레드클라렛 품종의 첫 세계 수출을 시작으로 4개 품종이 홍콩, 미국 등 10개국에 팔려나갔다. 현재 내수 및 수출시장 맞춤형으로 껍질째 먹을 수 있는 고당도, 고색도 대과립 수출용 품종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신품종 및 수출 시범단지도 확대 육성할 계획이다. 복숭아의 경우 금황, 홍백, 은백, 미소향 등 20여 품종을 개발했고, 이 중 13품종은 전국 재배면적의 6.4%에 보급됐다. 특히 금황과 홍백은 품질을 인정받아 수출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납작복숭아 품종인 새빛반도와 금빛반도를 품종보호출원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납작복숭아 특화단지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약용작물 품종 육성은 산업화를 위해 표준품종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오미자는 2014년부터 품종 육성을 추진해 한오미, 썸레드 등 3품종을 개발했고, 표준화된 품종 보급으로 오미자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도 모색하고 있다.

원종건 경북농업기술원 연구개발국장은 "신품종 개발의 최종 목표는 농업인이 새로운 품종을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재배하면 이를 소비자가 선택해 농가 소득으로 연결되게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소비트랜드를 반영한 신품종 개발 및 보급으로 청년농업인들이 농촌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 새로운 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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