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예스맨'만으론 안된다

"홍곡(홍곡:기러기와 고니)의 대지를 저희가 연작(연작.제비와 참새)이지만어찌 촌도(촌탁.헤아림)하지 못하겠습니까"-지난 8월16일 민자당소속의원 초청 청와대오찬석상에서 김종비대표가 김영삼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지나친 공손이 오히려 예의에 벗어난다는 과공비례쯤은 모를리없을 그가 군사정권때도듣기 힘든 극찬의 경어를 쓰는걸 보고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이 소리를 들은 김대통령의 기분이 어떠했는지도 궁금하다. 3공시절부터 철저히 2인자 수업을 받은 김대표의 체질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승만대통령의 방귀소리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넉살을 떤 당시 이모내무장관이 차라리 애교스럽다는 생각이 든다.요즘 민자당 집안형편을 보면 한마디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매사에 청와대지침을 기다리거나 대통령의 의중 살피기에 급급할 뿐 당스스로 문제를 풀려는 자률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다 당차원의 결정을 내리고도 청와대쪽에서 고개를 저어면 백지화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민의를 제대로 파악, 이를전달할 생각은 않고 위쪽 심기만 살피는 모습에서 과연 집권여당이 이래도 되는가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나각은 또 어떤가. 얼마전 환경세.출국세등을 들먹이다 세찬 반발에 부딛치자 슬그머니 물러선 적이 있다. 이때 황인성총리는 "앞으로 각 부처는 이해당사자와 충분히 협의한후 정책을 결정하라"고 관계장관을 질책했다. 한데 문제는 이중에 총리 스스로 주재한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도 있다는 점이다. 물의가 일자 장관을 나무라는 식이다. 이래서야 총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이 설수있을지 의문스럽다.

어디 그뿐인가. 주말인 지난 4일 약사회와 한의사회가 각각 극한대립으로 치닫는 대책회의를 열고 있을때 보사부 장.차관은 물론 주무국장까지 퇴청해버린 일도 있다. 정말 어이없는 노릇이다.

왜 이처럼 소신없는 무사안일주의가 만연되고 있는 것일까. 하기야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이 하루아침에 사퇴하고, 자고나면 또 누구 목이 달아났는가 전전긍긍해야 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몸을 도사리도록 만들법도하다. 거기에다 당대표나 총리까지도 슬슬 기거나 책임전가에 바쁜판이니 그 아래쪽이야 부문가지다. 소신껏 일하다가 잘못돼봤자 떠나면 그만인데 국록만 축내면서 감투에연연하는 모양새가 자못 민망스러울 따름이다.

게다가 정부시책을 비판하면 반개혁적 음해로 매도하고, 어쩌다 바른 소리하면 소영웅주의자로 몰아세우는 어긋진 풍토도 문제다. 문민시대라면서 왜 반대의견이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인가. 이러한 경직된 분위기가 곧 무소신.무능공직자를 만드는 씨알이 되고, 온통 예스맨만 우글거리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도 신이 아닌이상 전지전능할 수는 없다. 그의 주장이나 판단이 다 옳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럴때 고언하는 일은 각료나 당직자, 측근참모의 몫이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각하, 그래서는 안됩니다"라고 용기있게 직간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이는 곧 대통령 자신의 불행일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심히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달리는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건 그렇다치고 무엇보다 다급한 것은 발등의 불부터 꺼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추석을 앞두고 다락같이 치솟는 물가고에 모두들 넋을 잃고 있다. 금융실명제 실시에 따른 10월대란설도 우리를 불안케한다. 우선 국민들의 마음부터진정시켜놓고 볼 일이다. 정치의 요체도 바로 여기에 있는게 아니겠는가. 이럴때야말로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는 용기와 지혜가 요구된다. 그리고 김대통령도 바른말하는 직언자를 곁에 두는 아량을 보여야 할 것이다. 자리를 걸고 듣기싫은 소리도 할 줄아는 옹골찬 소신이 보고싶다. 참새도 죽을때는 '짹'하고 죽는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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