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문예지들을 일별하면서 무서운 고통의 시를 만났다. 우리에게 고통보다 더 진실한 것이 있을까? 엄원태 시인의 근작들({밥 먹는다는 것}외 4편,{문학과 사회}가을호)은 고통으로 드러나는 욕망의 아이러니와 그것을 통하여도달하는 실존의 각성을 보여준다.{내 병인 만성신부전증은/ 결국 몸 속에서 소변을 배설하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로 시작되는 {내 병, 욕망의 아이러니}, 그것은 배설불능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먹어야 하고 오히려 더 먹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시달리는 고통이다.{몸 안의 물이 배설되지 못하고 남아돌아 퉁퉁 부을수록/강렬해지는 이 목마름}의 {기구한 아이러니}, 그것이 {지금 내게 구체적으로 주어져 있는 삶}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엄원태라는 한 시인의개인적인 질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를 읽을 때, 온갖 욕망의 덩어리인 우리 모두가 바로 이 병의 환자라는 깨달음에 전율한다. {요즘 많이 먹고 퉁퉁 부어서 터질 지경에 이르도록/어쩔줄 몰라 쩔쩔매는 지도층 인사들}은 결국 근원적인 의미에서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의 정신은 욕망에 휩싸여 이미 오래전부터 만성신부전증임에도 불구하고무디고 둔한 우리의 감각이 그것을 관념상태에 유예시키고 있다.삶은 관념이 아니라 실재이다. 그것은 지금 지극히 구체적인 고통으로 시인의 존재를 강타하고 있으며 그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하나의 실존으로서 무서움을 절규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어쨌거나 살아있음은 거의기적적}인 일이며, 그리하여 그는 {깨알같은 나의 감각 하나하나에게 감사한다}(미명, 혹은 미망?)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삶은 무조건적인 것}이라는 절대적인 명제를 확인한다. 삶은 고통이지만, 시인은 오히려 {고통을 알기 때문에, 처절하도록 비감한 아름다움을 거기서 쓸쓸히 느껴보는것}(아름다움에 관하여)이라고 쓰고 있다.이가을, 우리는 엄원태 시인의 {고통}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삶의 본질적인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고통의 심연에서 울려오는 존재의 음성에 실존적으로 부딪치고 깨어져야 한다. 설령 견딜수 없는 고통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본래적인 자기로 돌아갈 수 있을 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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