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활하는 새 13

실상은 관습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에겐 허록의 음악에 대한 경외감과 그가 추구하는 음악론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물론 그동안 허록의 음악에 의심을 가져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생각해보면 십수해의 그 긴 날들이 반란(반난)과 동조의 위태로운 연속이라 할수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 허록 몰래 음악대학 응시를 해본 적이 있었다.당시 그의 학급생중에 바이얼린으로 기악과를 지망하려는 친구가 있어 그의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여학생들에게 무척 인기가 있었으나 개교기념일 교내무대에서 본 그 친구 실력은 사실상 초보수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그러했다.

둘이 나란히 S음대에 시험을 치렀는데, 그가 떨어지고 그 친구만이 합격되었다. 그 친구가 거액의 돈을 들여 그 대학교수의 레슨을 받았다는 점과 당시어렴풋이 감지하고 있던 종래의 음악에 대한 거부로 인해 그 자체로서는 별다른 충격이 될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날 커튼 사이에서 실기심사가 끝나고 난뒤의 일이었다.

한 심사위원 교수가 난데없이 그를 불렀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누구에게 배웠느냐? 넌 그것이 제대로 된 연주라고 생각하느냐. 물젖은 생솔가지를 때는 것같이 거칠다. 음악은 아름다운 것이야. 그런 연주를 하려면 앞으로 넌 바이얼린을 잡지 말아라.

별것 아닌 소리라고 무시하려고 해도, 20대에 접어드는 가파른 감수성을 지닌 그로서는 자신의 음악행위를 되짚어보게끔 강요하는 말이었다. 게다가 연주자를 지망하는 음악도들이 절대가치를 인정하는 그 대학의 주임교수가 아니던가.

그러다보니 허록의 연주가 이상스럽게 비틀어져 들리고 그의 음악론이라는것도 뜬구름처럼 허황하게 느껴졌다. 그해 겨울은 그의 생애에서 아마 가장처절한 방황의 기록이 될 것이었다. 겨울바람에 온몸을 적시고 술에다 가여운영혼을 맡기던 나날이었다. 어디가도 올바른 음악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아니 어떤 것에서도 소리가 음악이 되고 음악이 소리가 되는 일종의 신경쇠약증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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