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활하는 새 17

동유는 바이올린을 건네받으며 그녀의 겨드랑이 아래에 소복이 난 까만 털을보았다. 그녀에게서 향긋한 비누냄새가 코끝으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십오년을 만졌으니 바이올린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현을 켜기 시작하였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한번도 연주해보진 않았지만 끝까지 몰고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정적으로 활을 움직였다.속삭이듯 질주하는 제1주제를 쏜살같이 켜나갔다. 중간 중간에 오보에나 베이스 악기의 음표들을 빼앗아 바이올린에 접목시키며 변주를 해나갔다. 피가로의 결혼은 반드시 흥겨운 것만은 아니라는 듯, 그 앞날의 슬픔과 고통도 묘사했다.

연주가 반쯤이나 진행되었는데도 그녀는 꼼짝을 하지않았다. 타월을 허리에감은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동유는 계속 켜나가려다가 그만 멈췄다.

[피, 무슨 음악 소리가 이래. 천사의 옷을 입히고 생기를 불어넣어줄 줄 알았는데, 되레 옷이 찢어지고 날개에 실핏줄이 다 말라버렸잖아]그녀가 통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음악을 따지니 동유도 화가 치밀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입속에서 뱅뱅 돌아다녔다. 원래 이런 게 음악이란 거요. 천상(천상)에는 천상의 노래가 있고 땅에는 땅의 노래가 있는 법이오. 신음과 절규와 몸부림이 땅의 노래가 아니겠소. 그러나 동유는 말을 꿀꺽 삼켰다. 그녀가 도망을 가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의 속말이 그녀에게 고스란히 건너간듯 하였다.

[땅의 노래요? 구태여 그런 노래를 덧붙일 필요가 어디 있나요. 그대로 두어도 사람들은 지치고 힘겨운데. 봐요. 고통을 고통으로 노래하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노래하는 것은 상승하는 꿈을 가지려는 시도에요. 아름다운 노래는 고통과 절규의 세상을 녹이는 황금빛 그릇이에요]

동유는 도무지 참을 수 없어 버럭 고함을 내지르고 말았다.[흥, 화원에서 꽃에 물이나 주는 철부지가 어찌 세상을 알아! 세상은 당신이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메마르고 층이 진 곳이야. 그것을 다 녹이고 함께 담는 그릇은 결코 존재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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