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록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소용돌이쳤다. 동유는 벌떡 상체를일으켰다. 지난밤 의자모서리를 때려 병 밑둥치를 날린 날카로운 맥주병이손에 잡힐 지점에 뒹굴고 있었다. 저것으로 그의 심장에 꽂으리라 실험삼아깨뜨려보았던 것이었다. 동유는 그 옆에 있는 새 맥주병을 손에 집었다. 그리고 일어섰다.허록은 미동도 않았다. 동유를 바라보는 커다랗고 맑은 눈을 떴다 감았다 하고 있었다.
동유는 등에 열기같은 것을 확 느꼈다. 병목을 잡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다 그자리에서 뛰쳐나오고 말았다. 연습실을 빠져나오자마자, 지상에 반토막걸린 창문을 향해 병을 집어던졌다. 병이 창앞에 있는 전신주 밑동에 맞아산산히 부저졌다.
그 다음날 동유는 술을 가득 마시고 쳐들어오듯 연습실에 왔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그의 난동이 있었는 양, 옛 그대로 말끔히 정돈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그저께 연습실을 찾았을 때보다 더욱놀라게 하였다. 그때와 다른 것은 연습에 몰두하라는 메모만 없다는 것이었다.하지만 들어오자마자 동유는 기물들을 때려부수기 시작하였다. 마치 밤새 벼러온 살의를 허록의 손길에다 풀듯이 그의 정돈한 의자들을 죄다 넘기고 난로를 피아노 위에다 던져버렸다.
이틀 뒤에도 유사한 현상이 되풀이 되었다. 허록이 그가 없는 사이, 깨어진유리창을 새로 갈고 조각난 건반을 본드로 붙이고 떨어진 바이올린 현을 갈아끼워 놓았지만 동유는 다시 맹렬하게 부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품고온 살의가 조금씩 흐무러지고 있었다. 다 부수고 돌아서 나갈땐 그의 눈가에어느덧 눈물이 맺혀진 것이다.
그리고 사흘 후였다. 동유는 연습실이 자신이 난폭하게 어질러놓은 그대로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세번째 만이었다. 그의 망가진 바이올린 옆에 허록이 쓰던 바이올린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쪽지 한장이 보였다.-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를 이해해 달라는 소리는 더이상 할 수없구나. 우리가 가려던 길을 다른 누군가가 걸어가 주리라는 기대를 안고 여길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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