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구겨진 종이.붓들의 향류

나는 일년에 개인전이 아닌 많은 횟수의 작품전을 갖는다. 초대전.그룹전등등. 슬라이드 사진을 찍고 작품의 명제 기타 여러가지의 약속을 하게 된다.이때부터 나의 긴장과 불면증은 시작되는 것이다.온통 머리속은 어떤작업을하여야 할까? 라는 생각에 길을 걸어도, 신문을 보면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이 고민에 휩싸여 헤어나지를 못한다.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면아른거리는 작업의 고민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바로 누웠다, 거꾸로 누웠다, 라디오의 잔잔한 음악을 틀었다, 껐다, 가슴의 피까지 토해낼 듯한 어느 외국 가수의 노래를 한껏 볼륨을 높이면서 듣기도 한다. 이렇게 작업전까지는 쫓기는 기분으로 불안해 한다. 어떻게 그 고민과 고통을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작업실에 종이를 펼치고 준비를 한다. 붉은색.푸른색.녹색.검정.보라색 여러가지의 물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테이블 위에 자리를 채워 나간다.구겨진 종이와 붓들이 온 방바닥에 널려져 간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색들, 용수철처럼 강렬한 선들이 꿈틀거린다. 스스로 나의 몸을 물어뜯는 듯한 정열의 힘이 넘칠 줄 모르게 화폭을 채워 나간다.

붓을 입에 물고, 또하나의 더 큰붓을 오른손에 쥐고 의자에 깊숙이 몸을 맡긴다. 그러면서 이제껏 그린 그림을 응시한다. 그곳에는 정처없이 떠도는{큰바람}이 일고 있다. 그 바람들은 방랑자가 되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사라질줄 모른다. 맑은 공기를 맡고 싶어 창문을 열어 본다.어느새 새벽이 곁에 와 있다. 싸늘한 {한기}가 싫지도 않거니와 알맞은 {허기}를 느끼면서 붓을 놓는다.

생각하면 나는 한 그림꾼으로서 이 화폭에의 고통과 희열을 하나로 뭉쳐 즐겨 누리는 가 싶다.

그런데 일상의 생활에서도 고통은 고통으로, 희열은 희열로 간사하게 갈라놓지 않고 과연 화폭에의 향류처럼 살아내고 있는지 무거운 마음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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