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61)

그런 생각들을 얼른 털어 내고 그를 되도록 자세히 살펴보기로 마음먹고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약간 고개를 숙인 자세라 눈빛을 볼 수 없는대신 그의 얼굴의 온갖 특징을 나는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었다. 눈은 그다지크지 않고 입술도 얇은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윤곽이 뚜렷한 얼굴이었다. 반듯한 이마와 뚜렷하고도 좀 날카로워 보이는 콧날이 그런 인상을 주는 것 같았다.그가 갑자기 얼굴을 들어 나를 도리어 빤히 바라 보았다. 나는 속을 들킨 것처럼 당황하면서도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윤곽이 뚜렷해 전체적으로 선명한 인상인 것과는 달리 눈빛은 아주 섬세하고 깊어 오히려 여성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혜수 연극 하는 거 보셨지요? 그앤 어찌나 내성적인지... 통 연극 같은 건못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우리 혜수완 부다페스트에서 만났다구요? 이렇게 우연히라도 만날 줄 알았다면, 혜수랑 같이 만났더라면...]내 스스로 생각해도 딱하기 짝이 없은 말솜씨였다. 그는 전혀 상관 않는다는듯이 아주 느리게 레몬 쥬스만 쭈욱 들이키고 있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인나와는 달리 그나 혜수가 다같이 저렇게 고요하기만 하다니.그가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앞머리를 쓰다듬어 올렸다. 그리곤 나의 손바닥을 좀 볼 수 있겠느냐는 엉뚱한 요청을 해 왔다.얼떨결에 두손을 얌전히 탁자위에 내밀자 그는 나의 손금을 아주 신중하게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참으로이상한 만남이었다.

[우린 부다페스트에서 만났어요. 배낭 여행 중이었죠. 제가 허름한 차를 하나 빌렸는데 길을 몰라 헤매고 있던 혜수를 발견하고 제 차에 타라고 그랬어요. 잔뜩 흐리긴 했어도 비는 오지도 않았는데 감색 비옷을 걸치고 있었죠]혜수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기라도 하는지 그의 눈빛이 조금 서늘해졌다. 그는 아주 느릿느릿하고도 나즈막한 소리로 혜수와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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