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에게 경사를 강의하고 고관들의 시사토론장이 됐던 경연이란 창구를통해 연산조의 권력구조를 고찰하고 사화의 성격을 해명한 논문이 나와 관심을 끌고있다.경북대 권연웅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 {연산조의 경연과 사화}를 통해연산군은 국왕과 대신과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사이에 상호견제와 균형의 삼각관계 기능을 했던 경연정치를 파산시켜 자기의 권력기반을 스스로파괴시켰을 뿐 이를 대신할 효과적인 권력구조를 마련하지 못해 자멸했다]고주장했다.
다음은 권교수의 논문요지다.
경연은 세종과 성종의 양대에 획기적으로 발달했다.성종대에는 경연이 자주 열렸고 대신과 삼사가 경연에 참석하고 경연에서 모든 정치현안을 자유롭게 토론할수 있게 됐다.
따라서 경연의 정치적 기능이 극대화되어 경연이 곧 정치의 심장부가 됐다.
견제와 균형의 권력구조를 유지시켰던 경연은 성종말에는 이미 균형이 깨어지기 시작했으며 삼사의 독주때문에 국왕과 대신들의 역할이 위축됐다.삼사는 간쟁권을 극대화하여 권한을 대폭 강화했던것이다.
성종이 죽고 즉위한 연산군은 이처럼 불균형해진 권력구조에 대해 처음부터 강한 거부감을 가져 경연정치에 대한 반동으로 일관했다.즉위이후 삼사년동안 삼사가 왕을 순치시키려고 공세를 편 반면 왕은 경연을 기피하고간쟁을 거부하는등 줄다리기를 벌였다.
연산군4년의 무오사화와 연산군10년의 갑자사화등 두차례의 사화는 이러한대결구도를 깨트렸다.무오사화로 삼사는 간쟁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고갑자사화로 대신들도 정치적역할을 상실하여 삼각형의 두모서리가 없어지고 왕권은 절대화됐으며 경연정치는 파산에 이르렀다.이후 왕의 연낙과 사치는 심해지고 광기가 살륙의 학정을 했다.
결국 학정이 극도에 달하여 신하들이 목숨을 걸고 폭군을 축출하려고 궐기했을때 연산군은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졌다.
권교수는 [경연강의를 기피하고 경연정신을 모독한 연산군은 기왕의 권력구조와 정치엘리뜨를 파괴하기만 하고 효과적인 대안을 마련하지않아 몰락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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