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54)

작은오빠가 코피를 쏟은 모양이었다. 작은오빠가 머리를 쳐들고 다급히 안방에서 나왔다. 오빠의 손에는 선혈이 묻어 있었고 인중에도 벌겋게 코피가 묻어 있었다. 오빠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괜찮은 거야?]

뒤따라 들어간 내가 안타까워 소리쳤다. 그러나 작은 오빠는 천연덕스레 손과 코를 씻고 있었다. 거울속의 나를 건너다보며 무연히 웃고 있었으나 선연히 가선 진 눈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밤엔 내가 지킬게. 걱정 말고 푹 좀 자. 너무 무리해서 그래]탈지면으로 한쪽 코를 막은 작은오빠가 태연히 손을 닦으며 말했다.[그래도 코피는 쉬라는 경고야]

[아직은 주의야. 경고라고 판단되면 에스오에스를 보낼게. 그때 도와 줘]오빠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안쓰러웠지만,그런 면에서 작은오빠의 고집도 여간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도 날밤을 새울 작정인가. 아버지의 의식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때로는 음흉하게 웃으며 때로는 구성지게 흐느끼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버지의 의식. 그럴 때의 아버지는 흡사 배가 홀쭉해질 때까지 꽁무니로 이엄이엄 외줄을 뽑아내는 한 마리의 흉물스런 거미 같았다. 한번 물리면정신착란을 일으켜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타란튤라인들 그렇게 미욱하고 끔찍스러울까.

[.....흐흐흐. 난 그때 정말 오해했었소. 왜, 가을인가 겨울인가 나 몰래 선을 보지 않았소. 우연히 친구녀석한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처음 믿지 않았소. 나중에 그게 사실인 줄 알고 얼마나 낙담한 줄 모르오. 당신, 그사실 알고 있소? 흐흐]

작은오빠는 속도 좋지. 저런 망령의 늪 같은 곳에서도 공부가 된다니. 어서날이라도 밝았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의식이 시작된 지도 벌써 세 시간이 넘고 있었다. 아버지가 주무셔야 작은오빠가 좀 쉴 수 있을 텐데, 이럴 때는 신경안정제라도 먹여 푹 주무시게 해 드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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