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61)

[아까 전화, 형이었어?]그제야 아버지가 잠이 드셨는지 작은오빠가 거의 탈진한 모습으로 내 옆에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작은오빠는 전화 내용은 물어보나마나라는 듯이 더이상 언급이 없었다.

[어쩔 수 없었어]

작은 오빠가 아버지께 약을 먹인 걸 두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머리를 소파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는 작은오빠의 초췌한 모습이 파편처럼 아릿하게가슴속으로 파고 들었다. 내가 은유라면 저럴 때 따스하게 껴안아 주면 오빠의 기분이 한결 나아질 텐데하고 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내가 꼭 아버지의 행복을 빼앗은 기분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작은오빠는 거의 울고 있었다.

[잘했어, 오빠. 나도 진작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정말 잘한 거야.그건 행복이 아니야. 행복이란 건 자신이 느낄 수 있을 때 가능한 거야.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의식해]

[그건 우리 생각일 뿐이야. 그리고 사람은 꿈속에서도 느껴]작은오빠가 너무 신경이 예민해진 것 같아 불안했다. 작은오빠마저 무너지면우리 집은 끝이었다.

[오빠, 내가 커피 한잔 끓여 줄까? 맛있게]

내가 달떠서 말했지만 작은오빠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시원한 사이다 한잔 줄까? 나도 먹고 싶어, 응?]

그래도 작은오빠는 고개를 저었다. 만사가 귀찮아져 옴쭉달싹하기 싫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 작은오빠의 얼굴이 시든 푸새처럼 뇌랗게 찌들어 있었다. 작은 오빠도 어느새 아버지를 닮았을까. 그러면서도 작은오빠의입에서는 안개 같은 중얼거림이 가끔씩 흘러 나왔다.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애. 점점 회의적이야.아무래도 입원시켜야 될 것 같애]

[정신 병원?]

[어디든]

그렇게 말하는 작은오빠가 바람에 남실거리는 가녀린 등불같아 보였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