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

나는 한동안 망연자실 서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메시지도 보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나의 메시지는 엊저녁에 내가 꽂아둔 그대로 장미꽃 속에 묻혀 있었다. 내가 짐짓 밝은 목소리로 잘 주무셨느냐고 인사를 해도 아버지는 들은 척도 안했다. 마치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작은오빠가 더 좀 자지 않고 왜 벌써 일어났느냐고, 내 등뒤에서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침부터 질퍽히 눈물을 쏟을뻔 했다.어머니는 돌아가실때 한 순간이라도 아버지의 고통을 생각해 보셨는지. 우리들의 그릇에 담길 슬픔이나 아픔을 단 일초라도 상상해 보셨는지. 여자는 그릇이 예뻐야 하고 남자는 그릇이 깊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당신. 살아 생전결코 우리들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으셨던 어머니, 당신. 당신은 정녕 어떤그릇이었나요? 또르르 눈물 한방울이 미끄러졌다.

당황한 나는 득달같이 화장실로 갔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소리나지 않게 낯을 씻으며 쏟아지는 눈물을 진정시키려고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옆짝이 혹시내 눈물을 보지 않았을까, 못내 뒤가 켕겼다. 어머니가 단순히 병으로 돌아가신 줄만 아는 걔가 눈치 없이 왜 울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나의마음이 착잡하게 뒤엉켰다.

나는 오래도록 낯을 씻었다. 눈물이 멈출때까지 얼굴에 짯짯한 물을 끼얹으며 나는 문득 조퇴를 생각했다. 돌아보니 은유가 서 있었다. 다급하게 나오는나를 훔쳐본 모양이었다. 손수건을 꺼내주며 은유가 근심스런 얼굴로 물었다.[어디 아프니?]

[아침에 먹은 음식이 잘못됐나봐. 이젠 괜찮아]

다시는 은유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돌아서서 얼굴을 닦으며 변명했다.화장실 창문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푸른산과 붉은 햇살이 투명한 하늘아래눈이 부셨다. 무지개가 아니라도 충분히 가슴이 뛰는 풍성한 아침이었다. 이런 화창한 날에 출근도 못하고 몸져누운 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수 있을것 같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전 언니는 늘 4월이나 5월을 꿈 꾸었었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 노골적이라 아니꼽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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