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 아저씨께 조퇴 허가증을 내밀자 아저씨는 내가 아파서 조퇴하는 줄 알았던지 혼자 갈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설명하기가 귀찮아 고개만 끄덕거리고 교문을 빠져나왔다.버스를 타기로 했다. 부신 햇살이 좋아 내처 걷고도 싶었지만 그러면 한시간은 실하게 걸릴 것 같아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 십분쯤 기다려 버스에 오르자 다시는 못올 학교처럼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창곁에 얌전히 앉아 차창으로 스치는 무심한 도시의 풍경을 보며 버릇처럼 또 우리집을 떠올렸다. 왜 언니에게 무람없이 굴고 대들었던지 후회도되고 건강하게 살아 계셨을 때 아버지 어머니께 좀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것이저미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다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돌아간다면, 아니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부질없는 공상도 일었다.막상 그를 만나도 아무 할 얘기가 없었다. 그저 만나보고 싶다는, 만나야 한다는, 그런 생각뿐, 내 머릿속은 온통 텅 비어 있었다. 만일 어느 순간 내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린다면, 그 눈물이 시나브로 전염되어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버스에서 내렸을 때, 지난 겨울 은유랑 셋이서 소근거리며 들어갔던 지하 레스토랑이 내 눈망울 속으로 커다랗게 확대되어 들어왔다.
레스토랑은 그제나 이제나 붕어처럼 예쁜 입을 벌리고 앉아 있었다. 약간은경외감으로 계단을 내려섰을때 우리를 맞아주던 잔잔한 {유모레스크}의 선율과 아늑한 어둠. 드문드문 낮은 목소리로 두런거리는 사람들이 그림처럼 앉아있고 그 사이로 환상처럼 번지던 레몬의 불빛들. 바깥은 하얀 눈이 있고 그의푼더분한 너스레가 있어 더욱 좋았던 그 분위기를,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그때는 밝음보다는 어둠이, 아침햇살보다는 저녁 노을이 더 그립던 그런시절이기는 했다.
나는 은행앞에서 머뭇거렸다. 마치 여기서 누구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파란신호등을 보고 바쁘게 건너오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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