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 쿠바가 한국전에 참전했음이 뒤늦게 드러났다.지난해 말 공개된 미합참 극비문서는 장개석 총통이 52년 8월 시점에서 국부군 요원을 한국 전선에 파견하고 있었던 것으로 강력히 시사했다.이와 관련해 최대 1천5백여명의 국부군 심리전 요원이 한.미.대만 3국간 밀약에 따라 한국전에 비공식 참전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당시 대만 국방부 정치작전국 책임자였던 장경국 전총통이 참전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심리전 요원 투입을 확실히 입증하는 미비밀문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또 50년 12월에서 그 이듬해 1월 사이 쿠바의 보병 1개 중대 파한 제의를 수락했다. 이후 쿠바군 약 63명이 1차 파병돼 미군과 함께 작전한 것으로 보인다.
쿠바는 이어 군용기 파견도 제의했으며 미국으로부터 병력을 최소한 대대 규모로 늘리도록 요청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쿠바 깃발이 그려지고 쿠바인이 모는 수송기 최소 3대가 한국전에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파한 쿠바 병력이 대대 규모 이상으로 늘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부군 참전은 브래들리 미합참의장이 미국방장관에 보낸 {국부군 한국전 투입}이란 제목의 52년 8월 5일자 극비전문(JCS 1776/304)에서 사실상 확인됐다.전문은 국부군 2개 사단이 한국전에 투입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게 좋겠다고 건의하면서 [현재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개개인과 조직의 장비]란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국부군 요원들이 당시 이미 한국 전선에 와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극비란 표시외에 안보 관련 정보란 도장까지 찍어 각별한 보안을 요구한 전문의 해당 대목은 이렇다.
[---따라서 국부군 2개 사단을 사용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절차가 필요하다-유엔 참전국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어 장개석으로부터 현재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개개인과 조직의 장비도 포함해---국부군 32, 67 두 사단(대만67군 소속)이 한국에서 유엔군사령부와 함께 작전할 것이란 확약을 받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장개석은 한국전초 국부군 3만3천명과 군용기 20대를 보내려 했으나 미국이 중국을 의식해 거절하자 대신 심리전 부대를 보냈으며 장경국이당시 이를 실무 지휘했다고 라오 밍 탕 전대만공군참모총장이 밝힌 것으로돼있다.
또 미합참이 보관해온 휴전회담 회의록에도 공산측이 여러차례 [장개석 도당이 중국인민해방군 포로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기록돼있다.미합참은 이어 52년 9월 국부군 해병 1개 연대를 한국전에 투입하는 방안도구체적으로 검토했다.
그러나 국부군 전투 부대의 대규모 참전은 끝내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미태평양군사령관 앞으로 된 52년 5월 27일자 미합참 극비문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역시 {국부군 한국전 투입}이란 제목이 달린 문서는 [국부군 투입이 휴전 회담이 깨지거나 혹은 중공이 다른 곳을 침략하는 경우에 대비해서만 검토돼 왔음을 알린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이 문서가 사령부내에서도 꼭 필요한 군요원에게만 공개돼야 하며중국인이나 비미국 시민권자에게는 보여주지 말 것]을 강조했다.합참 문서 등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즉 미국은 한국전후기병력 부족으로 인해 국부군을 본격 투입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했으나 휴전이 타결되는 바람에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안사령관을 지낸 강창성 의원도 [6.25 때 대만군관학교를 마치고 갓 임관된 후 한국에 보내져 한국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소대장을 직접 데리고 있었다]며 [본인이 아는 이같은 소대장만도 22명]이라고 증언했다.대만의 한국전 참전은 당시 활발하던 그들의 본토 수복 노력과 직결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음 두 비밀 문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미합참이 50년 7월 17일 미극동군사령부에 보낸 비밀 전문이 그중 하나다.전문은 미국무장관이 당시 국부군의 본토 공습 계획을 알아 차리고 주대만 미공관에 이를 무산시키도록 긴급 지시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쿠바의 참전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졌다. 쿠바가 먼저 보병 1개 중대 파한을 제의하고 미국이 이를 받아 들였다.
대한 군사지원 현황에 관한 51년 2월 2일자 미합참 비밀 문서는 쿠바 보병63명 파한이 수락됐음을 재확인하면서 [병력이 1개 대대 규모로 늘어날지 모른다]고 덧붙이고 있다.
쿠바의 참전과 관련해 미국은 이들을 어떤 형태로 한국 전선에 투입할지를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50년 12월 15일 미합참 전략회의는 쿠바군을 푸에르토리코로부터 한국전에 투입중이던 미65 보병연대에 배속시키는게 바람직 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당시 회의록에 흥미있는 대목이 있다. 쿠바군의 성향을 분석하면서 [---이들이 군율에 순종하며 육군 1만5천8백여명중 80-85%가 백인이거나 스스로 백인인 것으로 간주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이 다루기 쉽다는 얘기다.
브래들리 미합참의장은 50년 12월 20일 미국방장관에게 극비 전문을 보내 미육군에 쿠바군 파한을 지원토록 조치했음을 보고했다. 그러나 쿠바군이 미국의 바람대로 대대 규모 이상으로 증파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쿠바의 군용기 파견 제의가 실현됐는지도 확실치 않다. 쿠바는 당시 제의를내면서 미국에 후불 조건으로 해당 수송기를 판매토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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