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20)

여러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하면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무엇을 시킬 때도그렇다. 어떤 사람은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시킨다. 그럴 때, 나는 첫째 시킨 일만 기억한다. 인희엄마가 처음에는 그랬다. -시우야, 물컵가져가구, 저기 빈 그릇 챙겨와. 참, 저쪽 자리에 깍두기 한 접시 갖다드려.그럴 때, 나는 새로 온 손님에게 식수 담긴 컵만 가져갔다. 인희엄마는 여러날이 지난 뒤 내 습관을 알았다. 그래서 늘 한 가지 일만 시켰다. 그 일을내가 끝내면, 다른 일을 시켰다."정선이라면 산이 있고, 강도 있고, 석탄 캐는 굴도 있고.… 그럼, 어디예요?""강, 강이 있어요"

"강 이름은 알죠?"

"아우라지강"

"아우라지강? 그 강 가에서 살다 언제 그곳을 떠났어요?"나는 그만 말문이막힌다. 다시 머리를 떨군다. 산골을 떠난지 많은 낮과 밤이 흘렀다. 그뒤나는 한 차례도 산골을 찾지 않았다. 도무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곳이 너무 멀게 여겨졌다. 할머니가 아직 계실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아까 테스트할 때처럼 손가락으로 세어 봐요. 일년을 손가락 하나로 치면몇 년이 지났나요?"

나는 그 햇수를 셀 수가 없다. 내가 산골을 떠나기는 어느 해 가을이었다.마당에 고추잠자리떼가 맴을 돌았다. 나는 강아지를 안고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가위질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밀짚모자를 쓴 사내가 삽짝 안으로들어왔다. 할머니는 여량장으로 열무단을 팔러가고 없었다. 그는 내게 고물팔 것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가만 있었다. 그는 집안을 한바퀴 둘러보았다.뒷짐진 손에 큰 가위가 들려 있었다. 집 뒤란에는 오래된 절구통이 있었다.그는 그 절구를 팔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가만 있었다. 집안에 어른이 없냐고 그가 물었다. 나는 안고 있는 강아지만 만졌다. 그가 갑자기 나의 팔을잡아챘다.

-누가 너보구 맛 있는 걸 사주겠다해두 따라 나서면 안돼. 세상은 참으로 험악하단다. 도시는 시우 너같은 순진뜨기를 속여 먹는 도둑놈들 소굴이야.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강아지가 내 손에서 빠져 나갔다. 복실아! 나는강아지 이름을 불렀다. 울음이 터지려했다. 어서 할머니가 나타나주기를 바랐다. 할머니, 하고 부르며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가 어디 가셨어?그가 물었다. 나는 울면서 강을 가리켰다. 내가 널 데려다주마. 할머니가 널데려오라 했어. 할머니가 여량장으로 나가신게 맞지? 그가 물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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