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8년해방후 소수족 독립투쟁

▨카렌반군지난 2월 22일 외신들은 일제히 47년간 독립투쟁을 해오던 미얀마내 최대 게릴라조직 카렌반군이 정부군의 집중포격과 가스공격을 견디다 못해 마지막 저항거점 카우무라기지를 포기했으며 6만명이 넘는 난민이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뿔뿔이 흩어졌다고 전했다. 반세기에 걸쳐 독립을 외치던 한 소수민족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48년 1월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나면서 미얀마(옛이름 버마)는 소수민족독립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버마족이 소수민족을억압, 버마족 중심의 미얀마 건국을 천명하고 소수민족의 전통양식과 언어사용을 금지했기 때문.

원래 소수민족은 47년 2월 미얀마의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으로부터 독립과자치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팡롱합의'를 얻어내고 버마족과 함께 독립투쟁 최전선에 나섰다. 그러나, 그해 7월 아웅산 장군 암살로 '팡롱합의'가 폐기되고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이 가해지자 이들은 버마족에 대한 배신감을 불태우며 본격적인 무장독립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미얀마는 1백30여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세계최대 다민족국가로 최대 소수민족인 카렌족이 전체인구의 7%, 샨족이 5%정도이며 인구 10만이상 소수민족이13개, 소수민족 반란군만 19개나 된다.

2백20만명에 이르는 카렌족은 지난 48년부터 카렌민족동맹(KNU)을 구성, 태국 국경지대인 마너플라우지역을거점으로 독립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중화기로 무장한 50만명의 정부군을 개인화기만으로 무장한 1만5천명 규모의 게릴라병력이 상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88년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최고통치기구로 자리잡은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는 위기감을 조성할 목적으로 반군세력의 위협을 크게 부각시켜 더욱적극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KNU에서 탈퇴해 정부군 앞잡이로 변신한 민주카렌불교도군(DKBA)을 앞세워 기독교를믿는 카렌족 마을에 대한 방화와 살육을 저질렀다. 또한 94년 11월 카렌반군 토벌작전중에는 콜레라와 악성이질을일으키는 세균을 공중에서 투하해 3백명이상의 카렌족이 전염병으로 숨지기도했다.

현재 태부테 임시정부부통령(56)이 이끄는 카렌족은 미얀마 정글지대나 태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이며, 저항세력은 거의 와해됐다.▨몽타이반군

미얀마,태국,라오스의 국경이 만나는 '황금의 삼각지대'. 전세계 헤로인의70%를 공급하는 이곳은 샨족 독립운동의 근거지이자 마약왕 쿤사의 절대왕국이다. 쿤사는 지난 93년 12월 미얀마 전체영토의 20%를 차지하는 인구 8백만명의샨주 독립을 선포했고 이에 미얀마정부는 반군토벌을 외치며 몽타이군(MTA)와전쟁을 시작했다.

약 4만명에 이르는 몽타이군은 AK 47,M16소총뿐 아니라 바주카포,박격포,대공화기를 갖추고 있으며로켓발사용 수류탄과 1백50㎜포탄을 생산하는 탄약공장도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제 SAM7 지대공미사일까지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몽타이군은 지난 85년 쿤사의 사병인 쿤사군과 샨족독립저항세력이 연합해 만든 것이지만 독립군의 성격은 크게 변질돼 이제는 쿤사 사병으로 전락했다. 따라서 몽타이군은 반군인 동시에 함께 세계에서 가장큰 범죄조직 비호세력의 성격을 띠게 됐다.

그러나, 쿤사는 마약거래의 독자적 거점확보를 위해 민족독립을 교묘히 이용함으로써 서방세계의 평가와는 달리 현지주민들로부터 '샨주 독립투쟁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이제까지 쿤사와 비밀스런 공생관계를 유지해 오던 미얀마정부가 돌연 전면전을 벌이게 된 이유는 샨국의 독립선언으로 드러난 쿤사의 세력확장에 대한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국경지대내 소수민족 및 반군관리,정치자금 조달역할을 해오던 쿤사가 세력확대로 더 이상 통제가 어려워져 이용가치를 잃자 제거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서방국가에게는 마약소탕작전이란 선전효과를 거둘수있어 88년 반체제 인사 학살이후 중단된 해외원조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 미얀마정부의 계산이다.

하지만 서방국가는 미얀마 정부가 단순히 다루기 힘든 쿤사 대신 구버마사회주의정당(CPB)의 린 밍샨을 새로운 마약거래책으로 내세우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쿤사를 제거해도 세계 마약소비량의 60%를 공급하는 미얀마의위치는 확고할 것"이라며 남미 마약왕 에스코바르가 사살된 후 더욱 강력한 '칼리 카르텔'로 주도권이 이양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94년 정부군의 대대적 공세 초기만해도 의례적인 공격으로 알고 퇴각해 주던쿤사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살윈강을 경계로 "더 이상 절대 물러서지 말라"며 강경자세를 보이고 있어 피비린내나는 전면전이 우려되고 있다.수도 양곤이 '전쟁의 끝'을 의미하지만 미얀마에는 아직도 민주주의와 군부독재가, 버마민족주의와 소수민족 생존권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쿤사는 누구인가

'아편군벌''어둠의 제왕'이란 이름과 함께 '독립영웅''자유의 투사'라는 상반된 이름으로도 불리는 샨국의 제왕쿤사(61)의 본명은 '장시푸(Changsi-fu)'. 중국인 아버지와 샨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쿤사는 미얀마북부의 상인들과 결탁, 50년대와 60년대에 아편거래에 깊숙이 개입한다. 69년 미얀마군에 체포되기도 했으나 가까스로 풀려난뒤 태국-미얀마국경지대의 소수민족세력을 편입해 지지기반을 다진다. 90년에는 미국리처기 기어 법무장관에 의해 뉴욕법정에 마약사범으로 궐석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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