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223)-강은 산을 껴안고(16)

"너가 시우 맞니? 너가 정말 내 손주니?"할머니가 나를 보고 묻는다. 눈을 연방 깜박거린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진다. 마대 같은 거칫한 손이다."북실댁, 손주 시우 맞잖아요. 양복 입고 넥타이 매서 못 알아보시나봐"실례댁이 말한다.

"할, 할머니!"

내 입에서 비로소 말문이 터진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다. 할머니를 덥썩껴안는다. 손에 들린 선물상자가땅에 떨어진다. 누군가 박수를 친다. 마당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친다. 눈물이 쏟아진다. 나는 훌쩍이며 울기시작한다. 할머니를 안은 채 땅바닥에 주질러 앉는다. 울음을 참을 수가 없다. 조그마해진 할머니다. 아이처럼 내 품에 안겨, 떨고 있다."이 총각이 내 손자 시우란 말이요? 정말 시우 맞아요?"

할머니가 소리친다. 둘러선 사람들과 눈을 맞춘다. 나는 할머니를 풀어준다. 울음을 그친다. 할머니 말이 이상하다. 할머니가 내 얼굴을 잊은 모양이다.

"망령기가 도졌어. 너무 흥분하셨나봐. 북실댁부터 방으로 모셔"윤이장이 말한다. 윤이장도 머리가 희끗하다. 그는 농업학교를 나왔다. 아버지의 제자다.

"시우형 왔구나. 나 알아보겠지? 춘길이야"

춘길이가 맞다. 어릴적, 그는 나를 많이 골렸다. 그는 나를 바보형이라 불렀다. 춘길이가 할머니를 부축해 일으킨다. 할머니가 내 허리춤을 잡고 늘어진다. 늘어지며, 너가 정말 시우 맞냐며 되묻는다. 나는 난감해진다. 명치가꽉 막혀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윤이장이 나선다.

"시우야, 작년부터 할머니한테 망령기가 있어. 멀쩡하다가도 헛소리를 하구. 시우 너가 읍내에서 돌아온다며 부득부득 마중을 나가잖아. 나룻배를 타고 나가는 걸 붙잡기도 여러 차례야. 올해 들어선 망령기가 더 심해졌지만.어쨌든 자네가 돌아와서 반가워. 자, 방으로 들어가자구"

춘길이가 할머니의 겨드랑을 쳐든다. 버둥거리는 할머니를 방으로 옮긴다.나도 방으로 들어간다. 한서방이 짱구와 순옥이에게, 방으로 들어가자고 말한다.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뒤따른다. 시우가 돌아왔다며, 삽짝으로 사람들이 몰려온다.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방안에 동네 사람들이옹기종기 둘러앉는다. 할머니를 방 가운데 모신다.나는 할머니 옆에 앉는다. 형광등불빛 아래, 오랜만에 할머니의 얼굴을 본다. 쪼그락진 얼굴이다. 작은 얼굴에 주름이 그물 같이 얽혔다. 체머리를 떤다. 빠꼼한 작은 눈을 연방 깜박거린다. 나를 본다. 그 표정이 나를 알아보지 못함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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