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증언한다(10) 전일본군 위안부 수기

(3) 잠시동안의 귀향혹독한 추위 또한 우리에겐 크나큰 고통이었다. 도안현은 노서아와의 국경지역이라 이루 말할 수 없이 추웠다. 위안소에는 방이 20개정도 있었는데 겨울이면 벽에도 얼음이 꽁꽁 얼어붙었고, 천장에서는 녹은 얼음물이 이불위로뚝뚝 떨어져내렸다. 방의 양쪽 가장자리에는 아예 골이 패어져 있어 그곳으로 얼음 녹은 물이 흘러내려갔다. 그런 방에서 긴 겨울을 보내는 일 자체가고문이었다.

위안소를 찾는 군인들은 정말 많았다. 몰려드는 군인들을 받느라 때로는아침식사를 점심때나 돼서야 겨우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군인들로부터 군표를 받아 모아두었다가 아침에 주인에게 주었다. 주인은 장부에 돈액수를 기록하고는 "너희들 이담에 고향갈때 다 계산해준다"고만 했다. 그러나아무도 그 돈을 돌려받은 사람은없다. 다만 한달에 한번정도 돈을 조금 받아 단체로 말수레를 타고 시내로 나가 영화도 보고 싸구려옷따위를 사곤했다.

그런 나날속에서 한 물품담당 일본군인과 사귀게됐다. 고향으로 돌아가기위해서는 부대내에 끈이필요하다고 생각해 내쪽에서 의도적으로 접근을 했다. 위안소생활을 한지 일년쯤 지난 어느날 그 물품담당자는 위안소밖에서살림을 차리자고 제의했다. 이때다싶어 "내가 끌려올때 어머니가 편찮으셨다. 한번만이라도 조선에 가서 어머니를 보고오게 해달라.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애걸을 했다. 그는 정말 돌아오겠느냐고 몇번이나 다짐받고는 어떻게손을 써서 조선에 돌아갈 수 있는 증서를 마련해 주었다.

조선땅에 들어서자 나는 함경남도 금천군 서북면 화암리에 사는 호점이언니를 찾아갔다. 난생처음 만나보는 언니. 동네사람들이 알려줘 밭에서 허겁지겁 뛰어온 언니는 네가 옥주냐며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나도 눈물이펑펑 쏟아졌다. 중국에 끌려간 이야기는 차마 할 수가 없어 언니가 보고싶어대구에서 왔노라고만 말했다.

언니집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편안하게 1주일정도 지낸후 대구로 돌아왔다.호점이언니와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나에게 어머니는 어디 가있었느냐며 캐물으셨지만 적당히 둘러대 얼버무렸다. 그럭저럭 남의집살이도 하며 1년정도 지낸 어느 날 또다시 기가 막힐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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