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언론의 앞지르기

신문에서 신문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다. 그러나 이번 한미자동차협상 과정을 취재하면서느낀 우리 신문의 현주소에 대해서는 한마디 쓰지 않을 수 없다.이번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워싱턴 현지에서도 무엇이 쟁점이 되고 있는지낌새라도 알아차리기가 매우 힘들었다. 양측대표단이 '회담 진행중에는 그경과를 언론에 알리지 말 것'을 서로 약속했기 때문이라는 것.그러나 현지 한국특파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중간 경과를 단 한줄이라도보도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나름대로 취재경쟁에 나섰다. 그 와중에 아쉽게도 일부 언론들은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주미한국대사관 측에서 배포한 자료를 몇번씩 '우려내서' 마치 협상중에 새로 나온 이야기인 것처럼포장해 보도하기도 했다.

정말 아쉽다 못해 한심한 일은 협상이타결된 한국시간으로 28일 오후에일어났다.

워싱턴에서 한미양측이 마지막날 접촉을 끝내고 한국대표단이 본국으로부터 '사인을 해도 좋다'는 최종 훈령을 받은 것은 저녁 7시40분께였다. 이에따라 한국대표단은 저녁8시10분께 미측과 추가접촉을 가졌다. 그리고는 양측 수석대표가 최종 협상안에 사인한 것은 이날 밤 10시30분께였다.그러니까 협상이 최종 타결된 시간은 밤 10시30분께였던 것. 최소한 우리정부가 협상결과에 최종동의하도록 결정한 시간을 따지더라도 훈령이 하달된 저녁 7시40분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동의한다고 해서미국측이자동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는 시점이긴 했지만.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보다도 훨씬 빠른 이날 오후4시 통산부가 기자단들에게 협상 타결내용을 '브리핑'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놀랍게도 미측의수용여부조차 확실히 예측할수도 없는 시점에서, 그나마 우리 정부차원의 최종 타결결정이 나오기도전에.

조간신문들은 이날 오후 8시께에 처음 인쇄돼 나오는 이튿날자 신문에 이미 '협상타결'소식과 함께 자세한 협상결과를 도표까지 동원해 낱낱이 싣고있었다. 이때는 아직 한미양측이 추가접촉을 시작하기도 전이었다.이를두고 특파원들 사이에는 우리신문들의 고질적인 '앞지르기'보도 근성이 다시 나타난 것이라는 자괴가 나오기도 했으나, 이보다 통산부의 이해할수 없을만큼 성급한 '앞지르기'브리핑이 더 큰문제라는 분석이 우세했다.어느 특파원의 "장관은 '정치인'이고 협상대표는 행정가여서 발표시간이달라진 것 아니겠느냐"라는 한마디에 다들 실소를 금치 못할 뿐이었다.〈워싱턴·공훈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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