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每日春秋

여전히 산을 대상으로 시를 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90년대는 전통적 서정시가 많이 부활된게 사실이다. 신서정 이란 간판을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그들 시가 보수화되었음은 말할 필요도없다. 그들 시인중의 한무리가 과거 민중시를 쓰던 이들이다. 그들은 민중적 유토피아를 꿈꾸다그것이 좌절되자 90년대 들어와서는 고향이나 유년시절, 완벽한 자연을 유토피아로 보고 있다. 서정의 대상이 바뀐 것이다.

서정시는 본래가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 유토피아는 시인과 대상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상태이다.전통적으로 서정시는 자연의 아들로서 자연과 시인이 하나되는 것을 꿈으로 하고 있다. 근대에와서도 문장파나 청록파의 전통적 자연시가 그랬고, 그 이전 김소월등 민요시파의 낭만적 자연시가 그랬다. 조지훈의 경우는 행복했다. 그는 쉽게 자연과 물아일체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의선배 김소월은 한번도 자연에 이르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반복적으로 청산과 합일하려 했어도그 산은 늘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근대인의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그러나 김소월시대는 자연이 완벽하고 신성했다. 그속엔 인간이 기댈만한 신성한 그 무엇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단지 인간이 타락해서 그곳에 이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날 저 산은 과연 신성할까. 오늘날 젊은 시인들이 여전히 물아일체를 꿈꿀까. 며칠전비에 젖으며 쉬고 있는 대둔산을 올랐다. 그 여름산은 분명 한낮에도 우주 중심에 뿌리내리고 있을 터였다. 내 영혼 식혀줄 것도 같았다. 그러나 점령군 진지같은 호텔에서 고스톱치면서 바라본그 산은 관광코스로만 겨우 만날 수 있었다. 패키지코스로 팔리고 있는, 이미 오래전 마음에서 떠난 저산, 돌아갈 수 있을까. 그대로 있긴 있을까.

〈시인.대구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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