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갑자기 어둠은 사방을 감싸고 멀리서 무서운 동물 울음소리 들리는데 이때 산신령이 휘익, 바람과 함께 나타났다. 내마땅히 안전한 길을 인도해야 할 것이나 산을 관리하는 이 몸의 스케줄이 워낙바쁘구나. 대신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불빛을 하나 주겠노라. 자, 어디 멀리 놓아두랴. 아니면 네 가까운 손안에 쥐어주랴? 하는 말씀에 웬 뜬금없는 소리?두말할 것 없이 내 가까운 불빛이지 하고 냉큼 받아 든 그 나그네, 무사히 길을찾았을까? 글쎄다. 온 산의 길을 뺑뺑 돌다가 정작 가까운 인가에는 이르지 못하고 지쳐 쓰러지지는 않았는지.
한밤중에 산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산속을 헤매다 멀리서 깜빡이는 불빛이 보일 때의 그 희열과 안도감을. 그 불빛은 어쩌면 내 손안의 촛불이나 손전등에 가려 그동안 안보였을지도 모른다. 가까운 불빛때문에 내 동공은작아져 주위 어둠에 묻힌 산의 모습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언뜻 길이다 싶어 나아가다 보면 얼마나 많은 실망이 온 산을 뺑뺑 도는피곤과 허탈에 맞먹게 되던가.
몇번이나 넘어지고 그러다 손에 든 불빛마저 꺼져버렸을 때, 오히려 사방의 어둠에 눈이 익고 산이 제 모습으로 비치면서 저 멀리 작은 불빛하나 깜박이는모습 보인다면, 그래, 저 불빛은 바로 내가 저기로만 가면 이 갈증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멀리있는 작은 불빛 하나가 가까운 내 밝은불빛보다 낫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작금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기 불만 밝히려 들고 제 불빛만 크게 하려드니, 글쎄다, 잠시 제 앞길에 놓인 길을 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어둠 저편 산을 벗어나는 진짜 길은 보지 못하는게 아닐까. 조금만 자신의 불을 끄고 주위를 살펴보면 어둠의 막막함이 걷히며 먼 불빛을 볼 수 있을 게고, 작던 동공도커져서 내 눈은 발걸음을 앞서 나갈텐데.
〈세강병원.신경외과 과장〉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