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굿판은 끝났다. 신명도 잠시 쉬어야 한다. 어지간했던 동해바람을 종일 얻어 맞으며 드리워졌던 차일도 걷혔다. 웅얼거리며 칭얼대던 무악사물의 소리, 가죽과 쇠붙이의 부드럽고 차갑던 소리들은 원래의 제 자리로 돌아갔다. 동해안 별신굿의 상징으로 두르는 무녀들의 흰 머리띠도어느새 풀어졌다. 쾌자도 벗어 버렸다. 한결 몸들이 가벼워졌다.
지난밤을 꼬박 신명으로 보내서일까. 표정에서는 전혀 피로의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신명이 아직도 살아 첫 박이 울리면 또 한바탕 덩실대며 사위를 휘감는 풀이로 바뀔 자세들이다."까짓것 한 이틀 더 두드리면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갈텐데…"
패거리중 누군가 희덕거리며 불쑥 내뱉는다. 양이 차지 않는다는 말이다. 전 같으면야 일주일 정도는 너끈히 밤낮으로 굿마당에서 지내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굿은 없다. 경비도 문제지만 그것보다는 그만큼 세태가 웅크러 들었다. 불만이다. 그저 불만일 뿐이다."이만만해도 됐어. 날나리 들고 구박받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이만하면 됐지. 됐구말구…"인간문화재 김석출(75)의 넋두리다. 동해안별신굿의 대부격인 김석출. 그가 없었다면 이렇게 귀중하고 소중한 별신굿이 과연 제대로 전해 내려왔을까. 아무리 세습의 끈끈한 내력이 이들에게 있었다고는 하지만 급변해온 지난 시대를 고려하면 그것은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김씨무계는 김석출의 할아버지 김천득(金千得)으로부터 시작된다. 김해김씨인 김천득은 원래 무가출신이 아니었다. 풍류를 좋아한 한량으로 전해진다. 경북영일군에 살면서 무녀였던 이옥분(李玉芬)을 소실로 맞으며 무가의 기틀이 잡힌다. 이무녀와 굿에 다니면서 자연 별신굿에 탐닉한 셈이다.
이들 사이에서 3형제가 난다. 김범수(金範守) 김성수(金成守) 김영수(金永守). 모두 무업으로 대를잇는다. 그 자식들도 대부분 무업에 종사했으며 세습무로서의 가계가 탄탄해지기 시작한 무렵이다.
세 형제중 김석출의 부친인 김성수무계가 가장 관심을 끈다. 동해안별신굿을 오늘에 이르게 까지한 중심가계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굿에 사용되는 갖가지 예능이나 기능이 뛰어나고 가장 원형에 가까운 무업을 해왔다는 사실등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김성수에게도 3형제가 난다. 첫째아들 김호출(金好出). 온몸에 '끼'뿐이라는 이야기다. 지난 66년세상을 떠났지만 뛰어난 굿 감각은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남겨 지금은 셋째아들 용택씨가 그 뒤를잇고있다. 별신굿판에 유별나게 에피소드를 많이 남겼다. 둘째아들 김석출은 인간문화재까지 되고11남매중 셋째딸까지는 동해안 별신굿판에서 뺄수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막내인 김재출(金載出). 특히 꾕쇠 치는데 남다른 특기를 지닌것으로 전해진다. 해학적인 몸짓과 특이한 장단으로 굿판에서 인기를 끌었다. 현재의 부인 정채란은 지화에 일가견을 이루고 있으며 아들들인정희씨와 정국씨등이 사물놀이등으로 포항과 속초등지에서 후진을 양성할 만큼 다재다능하다.이상은 간단히 살펴본 김석출의 무계다. 이들은 김해김씨 삼현파로 울진군 평해면 사리에 그들의족보가 있다. 매년 10월15일에는 문중제가 열릴만큼 뼈대있는 집안이다. 그런 집안속에서 무가를이룬다는게 얼마나 어려운가는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러나 김석출은 훌륭한 무가를 이루며 귀중한문화유산을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어부들에게는 풍년을, 동네사람들에게는 행운을 주고있다.이달초에는 영국에서 공연도 가졌다. 풍어제를 우리의 고유한 가락과 춤사위로 엮어 펴보였다. 호평이었다. 세계무대가 이들의 특이한 의식과 행동과 무악에 찬탄을 보냈다. 재담과 사설에 미소를띠었고 한국에도 이같은 독특하고 율동적이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무대가 있다는데 놀랐다.김석출, 김유선(김석출의 현부인), 김용택, 김정희, 김정국, 김동열등 6명이 참가했다.각나라에서 최기량을 갖춘 음악인들의 잔치 런던의 파티칸극장에서 열린 모아마트페스티벌이다.프랑스와 남미 아프리카등 20개국에서 왔다. 1회공연에 그쳤지만 가장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이 공연에 참여했던 김석출의 조카 김정희씨(35.포항소리뫼음악학원장)는 "그들이 우리들의 청배장단이나 푸너리장단을 이해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나 눈과 귀로는 충분히 교감을 얻는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런 김석출가가 됐다. 무의를 예술로 승화시킨 셈이다. 아직 유랑집단같은 의미가 사라진것은 아니지만 동해안별신굿이 열리게 되면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파발마가 해안따라 전해진뒤 정해진 장소에 하루전 모여 지화를 만들고 제물을 장만하는등 공동작업이 이뤄진다. 풍어를 위해서. 안녕을위해서.
세상에는 궁금한 일들이 많다. 그래서 궁금한 사람들도 많아진다. 그 궁금증을 풀어주고 속 시원히 덜어주는 무업. 이제는 단순히 굿판에서의 갈채보다는 당당히 무대에서의 갈채를 마다 않는다.굿판을 둘러친 관객들만 대상이 아니다. 어느덧 굿문화와 굿예술이라는 독특한 장르가 탄생될 만큼 이들의 예술적 감각은 돋보인다. 그래서 세계무대에서도 당연히 주목받는다.어디에도 천민의식은 없다. 오히려 중요한 문화재가 됐다. 털끝만큼 다쳐서도 안되고 어느하나 소홀히 취급되어서도 안된다. 우리들의 세계적인 것을 우리들이 스스로 지켜야 한다. 중요한것은 유리속이나 책상위에서 지킬게 아니라 현장에서 지켜야 한다. 그래서 동해안 별신굿은 소중하고 귀하다.
〈金埰漢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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