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에 공부할 책과 도시락을 함께 둘둘 말아싸서 등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십여리의 길을 달려학교에 다닌 시절이 있었다. 필통을 열면 몽당연필이 잘 깎여 열병식을 하듯 가지런히 들어있고,연필심이 좋지않아 침을 발라가며 글을 받아적기도 했다. 방과후 개구쟁이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논길을 달릴 때에는 책보자기 속에서 빈도시락의 젓가락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즐겁기도 했다.때때로 배가 고파 등교길에 사랑방에 들러 씨고구마를 몰래 훔쳐 동네 어귀의 비밀장소에 묻어두고 귀가길에 파먹고 출출한 배를 달래기도 했다. 밀이삭이 알이 차면 밀서리로 허기를 달래며 나쁜 짓을 했다는 죄책감보다는 입가에 숯검정이 묻은 모습을 서로 지켜보며 배를 잡고 깔깔거리던모습이 눈에 선하다.
며칠전 교내를 순회하다가 참새떼가 보도에 내려와 따사로운 햇볕을 쬐면서 모이를 줍고 있었다.그런데 놀랄 일이 일어났다. 가까이 다가가도 참새가 날아갈 생각을 하지않고 있다가 지근거리에왔을때 총총걸음으로 나무숲사이로 숨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사람만 보면 먹이도 아랑곳 없이 달아나던 옛날 참새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날지 않는 참새떼와 같이 우리 모두는 '서서히 끓는 비커속의 죽음을 앞둔 개구리'마냥 타성에젖어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는건 아닌지, 결국 막다른 골목에 부딪쳐 오도가도 못하는 위치에 놓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본다.
어려웠던 시절을 앞서 살아가신 분들의 피땀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세계속의 한국'에 살고있다.그러나 이제는 독사굴에 손을 넣고 함께 사는 세상에 살고있다. 한걸음 물러서 보면 지금 우리는'풍요속의 빈곤'의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어려웠던 시절을 상기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재도약해야 한다. 그것이 풍요로움 뒤에 찾아드는 정신의 황폐화를 막는 길이다.
〈대구 상서여상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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