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부 25시 "바쁘다 바빠!"

요즘 주부들, 참 바쁘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만큼 정신없이 산다는 주부들이 의외로 많다. 아침일찍 통화가 되지 않으면 하루종일 연락이 안되는 경우도 흔하다. 오죽하면 오전 11시에 전화했을때 집에 있는 여자는 '간염걸린 여자'이거나 '게을러터진 여자', '인간성 나쁜 여자'라는 유행어가 있을까.

아내가 외출할때 따라나서려는 남편, 퇴근해 와서 아내더러 낮에 어디 갔었느냐고 묻는 남편은간큰 남자라는 우스개도 결국 '바쁘다 바뻐'를 외치는 요즘의 주부들을 빗댄 말이다. 취업주부들은 취업주부대로,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모두가 눈이 핑핑 돌만큼 바쁘다고 한다.주부들이 왜이렇게 바빠졌을까.

평범한 중산층가정 주부의 하루일과를 들여다보자. 꼭두새벽에 일어나 물만 찍어바른후 도시락싸랴, 아침먹이랴, 한바탕 전쟁을 치른뒤 아이를 학교까지 차태워주고 돌아와 남편출근시키고나면이제는 집안일. 후닥닥 설거지며 청소를 해치운후 집을 나선다. 오후 서너시까지는 자유시간. 이시간대를 부지런히 잘 활용해야 자기발전도 가능하고 친구들에게도 뒤처지지 않게 된다. 조금이라도 젊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수. 몸매관리뿐 아니라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서도 수영이나 헬스, 골프, 테니스 등의 운동 한두종목은 해야한다.

한시간쯤 몸을 푼후엔 외국어학원으로 달려간다. 국제화시대인만큼 영어나 일어도 입을 뗄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니까. 또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자아성장을 위한 강좌나 자기표현을 위한 메이크업강좌를 듣고 가끔씩 열리는 유명강사 초청 교양강좌도 참석하려 애쓴다. 2~3개 클럽에 들어있다보면 월 한번씩 열리는 모임도 금방금방 돌아온다.

그러다보니 점심은 대개 외식을 하게된다. 여럿이서 맛있는 별미식당을 찾아가거나 때로는 근교의 분위기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짙은 커피향에 젖어들어보기도 한다. 질펀한 수다속에서도 세상돌아가는 얘기며 생활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 시간낭비만은 아니다. 돌아오는 길엔 백화점이나 대형할인점에서 장을 봐 저녁밥을 준비하고, 신문이나 텔리비전을 좀 보다 오늘 배운 외국어공부복습한후 학원간 아이를 데려 오기위해 밤 11시쯤 차를 몰고 집을 나선다. 아이의 뒷치닥거리를마치고 나면 어느새 시계바늘은 자정이 지나있다.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낸 주부 윤태희씨(47, 대구시 남구 대명11동). 시간은 많아졌지만 하루가 정신없이 바쁘단다. 1주일에 3일씩 오전엔 사회단체의 상담자원봉사, 오후엔 2시간씩 일어공부를 하고 스트레스 해소겸 월 서너차례 친구4명과 드라이브후 싸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 점심먹고 목욕도 함께 하는 코스를 즐긴다. "1주일이 빠듯해요. 집에 있으면 살림 더 잘할것 같지만 오히려 게을러져요. 시간이 빠듯해야 얼른 얼른 집안일을 하게되죠"

자녀등교, 귀가, 학원시간에 맞춰 차태워나르랴, 점심과 저녁도시락을 뜨거운밥으로 새로 지어 갖다나르랴 자녀 뒷바라지로 하루해가 바쁜 주부들이 있나하면 외국어학원, 대학 사회교육원의 외국어강좌를 비롯 각종 사회단체의 주부대상교양, 취미강좌 등으로 좇아다니며 2~3개씩 배우는 열성파도 있고 건강생활과 다이어트 등을 위해 운동을 열심인 주부, 뒤늦게 공부하는 학구파, 사회봉사에 열심인 주부들도 많다. 그런가하면 고급레스토랑이나 커피숍, 들안길의 식당가는 점심때면주부손님이 80%%이상되고 대구근교의 분위기 있는 찻집이나 레스토랑도 주부들차지이다. 대개는고급승용차에 패셔너블한 차림들. '남편은 짜장면 먹고 아내는 스테이크 먹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 '집에 있으면 집멀미가 난다며'습관처럼 집을 나오는 주부들도 적지않다.요즘 주부들의 바쁜 일상은 자녀수가 적어져 뒷바라지할 시간이 줄어든데다 학교가 아이들을 맡아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김장, 된장 등을 담그지 않는 식생활의 간편화 등으로 전반적으로 시간이 많아진데서 비롯된다. 여유시간을 자기를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려는 의욕이 자칫 과잉쪽으로흐르기 쉬운데다 모두가 바쁜데 나만 바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조바심이 자기를 바쁘게 내모는경향도 없지 않다.

영남대 최외선교수(가정관리학과)는 "자기성장을 위해 열심히 배우고 취미생활을 하는 것은 좋은현상이다. 하지만 남들이 모두 바쁘니까 유행따라가듯 자기를 바쁘게 하는 사람도 적지않은것 같다. 자기생활에 치중해 자칫 가정의 안락함을 잃어버리게 해서는 안될것"이라고 강조했다.〈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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