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흥부나라'에 제비는 오지 않는다

쌀꾸러온 흥부가 놀부 마누라에게 주걱으로 뺨을 맞을때 사람들은 그참 고약하고 인정없는 형수 라고들 말했다. 놀부가 담뱃대로 동생을 윽박지를때도 욕심많고 비정한 형이라고 비난할뿐 놀부 의 시각에서 흥부를 비판해보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번 IMF사태를 겪으면서 친형제처럼 믿었던 미국이나 통화기금쪽이 달러를 빌려주면서 냉정하고 쌀쌀맞은 얼굴로 이것저것 내놓은 벅찬 조건들을 보면 마치 흥부를 대하는 놀부처럼 피 도 눈물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과연 미국과 IMF 그리고 외하를 지원하기로 한 선진국들은 무작 한 놀부이고 우리는 마냥 죄진것 없이 착하게만 살아왔는데도 저절로 가난해진 억울한 흥부인가 를 생각해봐야 한다.

놀부의 시각으로는 흥부야말로 지극히 비효율적인 가계경영을 해온 무지렁뱅이다. 소출나올 땅마 지기 한뼘 없으면서 아이들만 대책없이 줄줄이 낳는 흥부의 생활방식은 놀부가 볼때는 도대체가 틀려먹은 짓이다. 됫박쌀을 빌렸으면 그걸로 쑥떡이라도 만들어서 늘려팔면 부가가치라도 생길텐 데 쌀꿔다 오는대로 밥만해서 퍼먹는 꼴도 못마땅하다.

놀부네가 볼때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있는 흥부의 경제운용과 생활태도를 그대로 두고서는 이미 꿔준것도 떼이거나 큰집 곡간까지 축낼판이니까 주걱이든 담뱃대든 이차판에 호되게 매를 들지 않을수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쌀 몇되 꿔주면서 "이제부터 애는 더이상 낳지 말라 거나 한되는 쑥을 뜯어다 떡을 해서 팔고 한되는 반드시 죽을 쑤어서 늘려먹으라"는둥 갖가지 조 건들을 내걸어도 쌀 떨어진 흥부는 찬밥 더운밥 가릴새 없이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흥부나라'로 전락해버린 우리로서는 수입다변화 폐지, 정리해고 수용, 부실금융기 관 폐쇄등 발가벗기다시피하는 갖가지 악조건들을 쌀독빈 흥부처지처럼 감지덕지 수용할뿐 달러 주는쪽을 놀부같다거나 달러뭉치로 급소를 누른채 은행과 우량기업같은 노른자위를 거저 먹으려 는 심사가 아니냐는 감정적인 불만이나 비정함을 원망할 처지가 못된다. 지금와서 흥부신세가 된 것이 재벌들의 문어발식 거품경영 탓이라거나 정경유착에 의한 금융부패 탓이라는등 집안 '탓'가리는 것도 때가 지났다. 분명 원죄는 국민이 아닌 그들쪽에 있었지만 거품 처럼 살아온 우리의 허상도 되돌아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다. 신용카드 4천4백만장, 개인가처분 소 득 대비 카드이용률 12.6%%, 일본의 3배. 매년 8조원이 쓰레기로 실려 나가는 나라. 인구대비 국회의원 숫자 15만명당 1명 , 미국의회의 3배에 부패 연루 의원직 상실자 십수명, 망하 지 않을수 없다.

노동생산성은 미국.일본의 3분지 1인데 임금은 지난 10년새 미국.일본이 30%% 올라갈 동안 우리 는 240%%나 올렸다. 승용차 주행거리 23,300㎞. 국토가 수십배가 넓은 미국은 14,700㎞다. 그만큼 부지런히 일하러 돌아다녔다면 할말이 없지만 행락철 고속도로를 기억해 보라. 1인당 물소비량은 일본의 4배, 새냉장고 교체주기는 미국의 15년보다 배나 빠른 7년, 경승용차 비율은 일본의 7분지 1....

우리는 지난 세월 재벌의 허장성세와 무능한 정부의 무지개빛 선진국 구호속에 속아 바깥세상 물 빛도 모르고 거품속에서 그렇게들 살아온 것이다. 아직은 슈퍼에 가면 라면이 있고 주유소에는 기름이 있고 아파트에는 난방이 들어온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장롱안 금을 내다팔고 있는 애국운동에도 아랑곳 없이 외제담배 소비량이 거 꾸로 더 늘어나고 일부호텔 나이트 클럽이 터져나가고 집권말기 정부는 문서파기 의심을 받고있 는 정신나간 짓들을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라면도 기름도 사라지는 것은 순간이다. 러시아 속담에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있다"고 했다. 기업사냥을 노리는 이빨돋은 남 의 달러 무서운줄 모르고 돈좀 들어왔다고 다시 정신 못차리면 정말 끝장이다. 냉혹한 국제사회 에 박씨 물어다 주는 제비같은건 있지도 오지도 않는다는 현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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