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윤기의 세상읽기

이 어려운 시대 젊은이들을 겨냥하여 나는 쏘듯이 쓴다.

선종(禪宗) 웃대 어른인 달마가 세상 떠날 때가 가까워지자 제자들을 모두 불러모은다. 그는 제자들의 근기(根氣)를 한번 떠보고 그 중에서 법기(法器)가 될만한 물건을 하나 찾아내고 싶어한다.달마: 비로소 소림의 늙은이가 법을 전한다. 내게서 취한 바를 말해보아라.

도부: 문자는 집착하지도, 멀리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달마: 도부야, 너는 내 가죽을 얻었다.

도육: 사대(地水火風)는 본래 공(空)한 것이므로 한 법도 얻은 바 없습니다.

달마: 도육아, 너는 내 뼈를 얻었다.

혜가는 절 한 차례 하고는 말한마디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달마: 혜가야, 너는 내 골수를 얻었다. 뼈가 빈듯하구나. 너에게 법을 전한다.혜가는 무언(無言)으로써 달마의 법을 잇고 선종의 2조(二組)가 된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말 물어 보자. 지금 삶에서 무엇을 취하고 있는가? 하고 있는일, 살고 있는삶에는 지금 내 피가 통하고 있는가? 나는 하고 있는 일의 품삯이 아닌, 일 그 자체, 그 일의 골수와 희로애락을 함께 할수 있는가? 나는 삶에서 무엇을 취하는가. 가죽인가, 뼈인가, 문제는 골수겠는데, 과연 골수인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좋은 뜻에서 여기까지 굴러오게 한 것은 정교하게 짜여진 거대한 망상 조직이었다. 초중고 차례로 졸업하면 좋든싫든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그것도 좀 쓸만한 놈이 좋은성적으로 쑥 나와야 학계 관계 재계 언론계 법조계 같은 거대 망상 조직과 합류할 수 있었다. 일단 합류하면 조직의 '컨베이어 시스템'에 올라간다. 그러면 된다. 조직은 생리상 거기에 합류한 동아리를 외방인들로부터 차별화하고 신변을 철저하게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조직은 현대에 기능하는 유럽의 '부르(城)'다. '부르'안으로 들어가야 '부르즈와지', 즉 '성내(城內)사람'이 된다. 성밖으로 밀려나면 '프롤레타리아'가 된다. '그것 두쪽밖에는 나라에 바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취미가 별것이냐, 적성은 쥐뿔이다. '부르'에만 들어가면 중산층은 오토매틱이다. 무수한 청년들은 그래서 거대 조직에 운명을 걸었다. 일에 걸지 않고 조직 자체에다 걸었다.능률과 경쟁력은 조직 자체, 혹은 조직을 관리하는 국가가 알아서 관리해주었다. 그리고는 성내사람들끼리 나누어 먹었다. 둘러보라, 이것이 그 잔해다.

국가가 통제력을 잃으면 이런 거대조직은 하루 아침에 끈 떨어진 연이 된다. 아직도 이 거대조직이 조직 세포에게 평생직장과 일사불란한 연공서열을 약속할 수 있는가? 없다. 조직의 신화는 무너지고 무수한 종사자들은 유맹으로 떠돌아야 한다. 미국 자동차 공업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일하다한국 자동차 회사로 자리를 옮긴 한 애국적인 한국인 경영학자는 벌써 3년전부터 이상하다, 이러면 망하게 되어 있는데 왜 안 망하지,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했다. 이번 정초에 만났더니그는 쓸쓸한 얼굴을 하고는, 그러면 그렇지, 했다.

위기라고들 한다. 하지만 '위즉기(危卽機)',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있다. 입시 포기하고 죽자고, 자신의 골수, 컴퓨터 소프트웨어에만 매달린 한 대구 청년을 보라. 조직 관리자인 화이트칼라도 근육 노동자인 블루칼라도 이제는 없다. 골든칼라, '돈되는 물건'이 있을 뿐이다. 젊은이들에게 권한다. 조직의 수구세력이 우굴거리는 대학은 더 이상 거대조직으로 통하는 고속도로가 아니다. 거기에서 가르치는 것은 그대들에게 유익한 바가 이제는 많지 않다. 조직에의 길은 독창적이지 못한인간들에게 양보하라. 이제 거대조직은 창의적인 그대들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넓은 세상을 기다리면서 진정으로 그대들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라. 좋아하면 자주,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전문가가 된다. 좋아하는 일의 전문가가 되는 길, 골든칼라로 통하는 고속도로다. 하는일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삶의 골수다. 그것을 취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윤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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