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 데스크-언론계 IMF파수역 소홀, 권력지향성 오랜 폐단

영어로 언론을 워치독(파수견)이라고 한다. 언론이 사회의 위험을 미리 경고해주고 사회의 잘잘못을 감시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그런 워치독이 요즘 수난을 당하고 있다. 정부의 언론탄압 때문이 아니라 IMF사태로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경영압박을 받고있기 때문이다. 대량감원이다, 감봉이다 하여 하루 하루를 텅빈 가슴으로 불안과 초조 속에 보내고 있다.

서울의 모 유력신문은 간부 25%%를 퇴직시키고, 또다른 신문은 1천여 종사원중 2백50여명을 내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초급간부는 물론이고 평사원에게까지 일괄사표를 제출케 하는 곳도 있는모양이다. 9개 지방사에서는 2월초까지 3백40여명을 명퇴 또는 정리해고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3월이 되면 어떤 혹심한 뉴스가 나올지 조바심나게 한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워치독의 늠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상갓집 개처럼 풀죽고 처량한 모습이다. 자본주의의 비정함이 이런 것인가 하고 되뇌어보지만 때늦은 후회일 뿐이다. 난파된 배에남아있는 자나 쪽배에 퇴직위로금을 싣고 떠난 자나 앞날이 걱정스러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언론계의 수난은 어찌보면 자업자득인지도 무른다. 그래서 남을 탓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IMF사태에 대한 파수를 게을리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이다. 도둑을 보고도 짖지 않았던데 대한 죄값이다. 무능한 정부를 파수견이 바른 길로 몰아가는데는 한계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환난과경제위기를 꾸준히 경고할수는 있었을 것이다. IMF사태라는 거대한 재난을 눈앞에 두고서도 이를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후각과 청각의 마비를 뜻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언론에 국한된일은 아니겠지만.

칭기즈칸, 나폴레옹과 함께 세계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에게는 칼리스테네스라는 어용사가(御用史家)가 있었던 모양이다. 알렉산더는 자신에게 항거하는 도시에 대해 부녀자 어린이 할것 없이 씨를 말리고 불태우는 '공포전법'으로 전쟁에 나섰다. 도시의 모든 것을 건 항쟁의지가 아니고서는그의 군대에 맞설수 없도록 한것이다. 이런 행적으로 인해 알렉산더는 야수적 폭군으로 기록되고있다. 그런데도 어용사가 칼리스테네스는 "천하가 알렉산더의 도래를 기뻐하는도다"하는 식의 터무니 없는 역사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 언론의 권력지향성은 오랜 폐단으로 지적 되어왔다. 권력자에게 맹종하는 어용사가적인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소가 죽어도 뿔을 고치고 말겠다는 '사정개혁'에서, 실체 없는 '세계화'에서 그런 자화상을 보게 된다. 이같은 속성은 사회정의와 합리성을 해치는 파탄적 악덕이 될수 있다. 또 환경감시라는 파수견 본연의 역할을 소홀히 하게 되는 원인이 될수 있다. IMF사태는 안이한 '안방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언론은 그 '안방 자본주의'를 안주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미각에만 정신을 팔아온 파수견들이 감시를 등한히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IMF사태를 몰고온 청와대의 전주인은 며칠전 "가슴 아프고 송구스럽다. 어떤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전했다. 너무도 한가해 보이는 언급이다. 수백만의 실직 가장에게, 생계급을 위협당하고 있는 직장인에게, 자살한 주부에게, 도둑이 된 아들에게 어떻게 책임을지겠다는 것인가. 말보다는 '속죄'의 몸가짐이 필요한 때가 아니겠는가.

오늘 새정부가 출범했다. 정축(丁丑) 무인(戊寅)의 국난을 어떻게 이끌어줄지 자못 기대하는 바가크다. 국민들의 금모으기운동에 걸맞은 지도력과 사회의 접착제가 될수 있는 도덕성을 보여줘야겠다. 그리고 두번 다시 "어떤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소리를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새정부를 맞는 언론도 각오를 달리해야겠다. 느닷없는 '김대중사건' 파수는 그만두고 정부가 책임못질 소리를 하지 않도록 국가를 파수하는데 전념해야 할것이다. 언론인들을 쪽박만 채운채 거리로 내몰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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