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80년대로 돌아간 자취촌 풍속도

70~80년대 대학 자취촌은 춥고 배고파도 낭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학 주변 자취촌은 썰렁할뿐 아니라 낭만마저 사라졌다. 더 고통스런 시대.

영남대 뒤편의 자취촌. 전봇대에 겹겹이 붙은 '셋방' 광고. 한집 건너 한집 꼴로 '셋방' 팻말이 문패 옆에 걸려 있다. 심지어 버스 승강장의 노선 안내판까지 셋방 광고가 점령했다. 동네 초입과집 인근에 삼삼오오 모인 아주머니들이 눈에 뛴다. 방 구하러 오는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나선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방 구하기 조차 어려웠었는데. 대학 자취촌은 아직 '봄'이 아니다. 많은 학생이군에 입대하거나 휴학해 자취나 하숙을 하려는 학생 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2~3년 전 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원룸. 한때 인기가 좋았지만 지금은 방이 남아돌고 있다. 방 값도지난해 보다 떨어졌다. 10개월에 1백10만원했던 영남대 인근 사글세방이 올해는 95만원. 경북대인근 전세 사글세 방도 10~20% 내렸다.

대구대 인근에서 원룸을 임대하는 한 주인은 "방 17개 중 빈 곳이 12개나 된다"며 "사글세 2백30만원짜리 방을 보증금 없이 1백50만원으로 내려도 들어 오는 학생이 없다"고 걱정했다.밤이면 자취생들로 붐비던 학교 주변 식당이나 분식점, 술집도 예전만 못하다. 대학촌의 음식 값이 다른 지역보다 10~20% 싼 편이지만 학생들에겐 이마저 큰 부담. 술 생각이 나면 슈퍼마켓에서 술과 안주거리를 사들고 아예 방에서 해결한다. 비디오방, 당구장, 만화방에도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경산시 조영동 한 식당 주인은 "저녁이나 밤늦은 시간이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러 오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식당이 텅 비어 냉기가 흐를 정도"라 했다.

IMF가 자취생활을 80년대로 되돌렸다.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려 친구와 '동거'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대구 시내에 집이 있는 상당수 학생들은 이미 짐을 싸 집으로 돌아갔다.영남대 영문학과 4년 조일교군(25). 대구에 부모님이 계시지만 하루 4시간의 통학시간을 아끼려복학 후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해왔다.

밤 늦게 도서관에서 나와 친구와 나누는 술잔. 가끔은 분위기 있는 커피숍에서 귀여운 여자 후배랑 데이트. 일주일에 한 번 쯤 영양 보충을 위해 돼지갈비 식당을 찾기도 했다. 공부가 힘들어도쓸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느닷없이 찾아온 IMF한파로 낭만이 '사치'가 됐다. 30만원이던 한 달 용돈이 지난달 부터20만원으로 줄었다. 방세와 책값을 빼면 남는 것은 10만원 안팎. 세끼 모두 1천원짜리 교내 식당'짬밥'으로 바꿨다. 환율 폭등으로 값이 두배로 뛴 원서(原書)도 올해는 절반 값인 복사본으로 샀다. 친구·후배와 어울리는 자리도 가능하면 피한다.

모두가 힘든 시대. 자취촌도 예외가 아니었다. 〈金敎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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