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수립 50돌 되돌아본 문화예술 (5)방송

3년전 방송인들은 국내 최초의 방송통신위성 무궁화호의 발사장면을 지켜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1927년 일제 식민통치의 도구로 출발한 우리나라 방송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광복 50년만에 일본과 어깨를 겨눌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은 방송인 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뿌듯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불과 3년이 지난 지금 방송인들의 표정에는 그같은 자부심이나 기대감을 찾아보기어렵다. 위성 안테나와 케이블TV를 통해 일본 위성방송이 무차별로 침투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위성방송법안도 만들지 못한 채 시험방송에만 머물고있기 때문이다.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봄.가을 개편 때만 되면 일본 프로그램의 포맷이나 편성표를베끼기 위해 방송사의 편성 담당자들이 부산에 눌러앉아 일본 TV를 시청했다든가, 사장이직접 PD에게 일본 프로그램 녹화테이프를 던져주며 똑같이 만드라고 주문했다는 이야기 등은 지난 시대의 우울한 삽화일 수만은 없다.

지금도 일본 프로그램을 복제한 듯한 프로그램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으며 제목이나포맷을 모방하는 프로그램도 넘쳐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일본의 어느 민방이 우리나라의일본 프로그램 모방실태를 꼬집는 프로그램을 방송해 재일동포나 방송인들은 물론 우리 국민 전체를 낯 뜨겁게 만든 일도 있었다.

더욱이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맞아 좋건 싫건 일본과의 방송대결을 피할 수없게 됐는데기술이나 자본은 물론 준비자세부터 한참 뒤처져 있어 국민들의 걱정을 사고 있다.물론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쳐 48년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우리 방송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건국 당시 처음으로 태극기를 내걸고 방송을 시작했을 때는 채널도 라디오 하나에 지나지않았으며 청취자 수도 고작 20만명을 넘을까 말까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지상파 채널만도 TV 5개, 라디오 15개에 이르며 케이블 TV와 지역 민방, 위성TV까지 합치면 시청할 수있는 국내 TV 채널만도 40개 안팎을 헤아린다.

지난 50년간 우리 방송의 발전성과는 단지 채널 수나 TV 수상기 보유대수의 증가에 머물지 않는다. 61년 TV 개국과 80년 컬러TV 시작, 95년 케이블TV 출범 및 위성TV 시험방송개시 등을 거치며 제작 및 송출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고 프로그램의 질도 부쩍 높아졌다.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의 프로그램도 미국 뉴욕 페스티벌이나 캐나다 밴프 페스티벌 등의권위있는 국제방송제에 당당히 입상하는가 하면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 각국으로 수출돼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

또 선거운동 과정에서 후보자들의 TV토론을 이뤄내면서 이른바 '미디어 정치'의가능성을보여주었고 비록 선진국 수준에 이르려면 멀기는 했지만 투표자 조사결과방송을 정착시키면서 선거방송의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금에도 독립성과 자율성을 의심받고 있으며 프로그램의 저질 시비나 표절의혹도 여전하다. 또 최근 수달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드러났듯이제작윤리가 확립돼있지도 않고 제작여건도 열악하기 그지없다.

남북한의 방송은 분단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동질성보다는 적대감을 부추기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방송 교류를 위한 남북한간의 어떠한 합의도 이루지 못한것이 현실이다.

특히 'IMF 한파'가 밀어닥치면서 지역민방과 케이블TV는 그야말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으며 지상파 방송들도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위성방송 역시 통합방송법이 제정된다해도 지금의 시장 여건으로는 제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쏘아보낼 가능성이 희박하다.미래를 열어가는 것은 바로 시청자인 국민의 몫이다. 건국 50년을 맞는 오늘날 우리 방송이'지명(知命)'이란 성인의 표현대로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받들도록 하려면 방송정책에 관한합의를 이뤄내는 일에서부터 질좋은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직접 방송환경을 감시하는 데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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