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북풍논쟁 이래도 될까

지난 대선때 한나라당 후보자측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북한에 총격시위를 요청했다는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로 사실규명을 해주기를 촉구한 바 있다. 아울러 수사과정에서 고문이있었는지 여부도 꼭 밝혀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안기부가 내친김인지는 몰라도 '96년 4·11총선전 판문점 북한군 무력시위사건'도 조사하겠다면서 87년 KAL폭파사건, 92년의 이선실간첩사건까지도 정치적 목적의 의혹사건으로 거론해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야당은 97년 대선전의 총격요청의혹수사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과거 두차례 대선때의 북한책동도 의심스럽다고 하는 것은 '물타기 수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야당의 주장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하기 이전에 도대체 국가최고정보기관이 과거 대선때의 북한 동향에 대해서까지 수사대상에 올린 이유를 알기 어렵다. 물론 국가안위에 대한 사안은 어느 때 일이든 진위를 파악할의무를 안기부가 갖고 있음은 당연하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가의 총체적안보도 굳건히 다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와서 KAL폭파도 정치적인 음모가 있는 듯이 시사하고 이선실간첩사건도 선거목적에이용당한 의혹이 있다는 듯한 내용의 발표를 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과거의 안기부등 국가기관이 수사한 내용을 전면(全面) 뒤집는 것이라면, 새롭게 출발했다는 안기부의 소명의식(召命意識)의 발로라고 보아야 하는가. 참으로 혼란스럽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취지로 과거를 부인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있을 수 있어도 국가정보를 총괄하는 기관에서 그것도북한관련 사실을 1백80도 부정하는 듯한 안기부의 성명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목전의 북풍수사도 답보상태인데 과거의 북풍까지도 일괄 수사하겠다는 의욕이 과연 합리적인 발상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비밀리에 첨단 무기와 장비를 들여오는 사실조차도 새는 사태가 벌어져 국민들의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명백한 북한의 도발과 책략으로 인식됐던 KAL기사건과이선실사건이 확실한 근거도 없이 당시 집권세력의 음모라는 암시를 하는 것은 신중치 못하다.당시 사건에 의혹이 있으면 소리없이 수사해야 한다.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않았지만 안기부가 거듭나기 위해 명칭도 국가정보원으로 바꾸고 원훈(院訓)도 '정보는 국력이다'로 새로 만들었다. 그런데 왜 정치 한복판에 뛰어드는 인상을 주는가. 세계적인 정보전쟁시대에 정치문제개입보다 경제정보수집에 힘을 쏟겠다는 안기부의 다짐은 어디로갔는지 의심스럽다. 안기부가 정치쟁점에 휘말리지 않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자세를 가져야만북한에 농락당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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