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칠성초등학교 5,6학년 시절, 우리집은 학교 건물 바로 뒤에 있었다. 학교 건물 바로 뒤에 있었다는 것은 교문과 반대쪽에 있었다는 뜻이다.
등교할 때마다 하교할 때마다 나는 담을 타넘고 싶다는 유혹과 나는 싸워야 했다. 등교할 경우집에서 나와 학교 담을 타넘으면 바로 우리 교실이었다. 담을 타넘을 경우 등교에 걸리는 시간은5분이 채 못 되었다.
그러나 학교 담장을 따라 먼길을 걷고, 교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가고, 넓은 운동장을 건너 교실에이르는 길은 20분이상의 시간이 쓰이는 멀고도 지루한 길이었다. 하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수업이 끝난 뒤에도 나는 학교에 남아 일을 했다.
선생님을 도와 출제도 하고 채점도 했다. 초등학생으로서는 누리기 힘든 특권을 나는 두루 누렸다. 그렇게 일하다 밤 9시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허다했다. 한해의 3분의 1 가까이 나는 그런일을 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지척에 있었다. 밤이면 보는 사람이 없었다. 담을 타넘으면 5분 거리였다. 선생님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선생님은 내가 담을 타넘어 집으로 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생님이 나에게담을 타넘으라고 한 적은 없다. 밤 늦은 시각까지 부당 노동에 시달린 어린 제자가 안스러웠겠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담 타넘기를 권한 적은 없다.
나는 부끄럽게 고백하거니와 그 담을 타넘은 적이 있다. 벌건 대낮에는 타넘은 적은 있다. 그러나자랑스럽게 고백하거니와, 밤중에 그 담을 타넘은 적은 없다. 선생님을 도와 출제하고 채점하는특권을 누리던 날 한밤중에 그 특권의 나머지를 담 타넘는데 써먹은 적은 없다. 부당 노동의 특권을 누리던 날이면 반드시 퇴근하는 선생님을 따라 넓은 운동장을 건너고, 교문을 지나고, 긴 학교의 긴 담을 따라 학교 건물 바로 뒤에 있던 우리집에 이르렀던 것으로 나는기억한 裏 교문 앞에서 어둠 속으로 어린 제자를 배웅하던 우리선생님, 끝내 담 타넘기를 교사하지 않던 선생님, 선생님, 고전적인 우리 선생님.
나의 아들딸은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미국에서는 사제지간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교사가, 학교와의 재계약에 실패하면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하는 예가 허다하다. '교권'이라는 말을 나는 미국에서 들은 적이 없다.
미국의 교장선생님은 학교의 허드렛 일을 도맡는다는 의미에서 경비원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미국의 교장선생님은 주차장 경비원이라는 말도 있다. 미국 교장선생님에게는 주차위반 스티커를발부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교장의 권위는 '교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대한 그 수더분한 봉사의 실적과, 졸업을 사정(査定)하고 학생을 상급학교에 추천할 때의 그 추천권에서 나온다.
아들딸이 각각 고등학교 2, 3학년에 다닐 때 물리교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적이 있다. 그 물리교사를 영결하는 자리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미국의 고등학생들이 그렇게 섧게 우는 것을본 적이 없다. 내 아들딸이 그렇게 섧게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1주기, 2주기를 맞아 학교에서제사까지 지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교권이 무너진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아이들이 예전같지 않다고 어른들이 근심한다. 아이들은 원래 예전 같지 않은 법이다. 예전과 똑같으면 그것은 아이들이 아니다. 예전과 똑같은 것은 어른들이지 아이들이 아니다.
나는 선생님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군사부일체의 이데올로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교권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데 다른 의견이 있다. 교권은, 오로지 가르치는 분들이 그 가르치는 태도로써만확립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의 내 선생님, 내 아들딸의 물리 교사 같은분들이 벌써 교권을 확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권에는, 교사가 학생을 모욕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 절대로 학생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교사, 절대로 학생을 모욕하지 않는 교사만이 교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선생님, 저는 지금도 담 타넘고 싶다는 유혹과 싸웁니다"
〈소설가·미국 미시건주립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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