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가을 단상

가을은 우리에게 시간의 빠른 흐름과 유한성을 느끼도록 해준다. 어제같이 시작된 가을이 어느새 다 지나간 것 같다. 그런데 가을을 마주하고 있으면 아름답고 찬란히 빛나던 모든 것들도 시간 속으로 덧없이 스러지고 만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모든 존재는 무한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가을의 진정한 표상이 아니겠는가? 특히 가을의 자연은 '존재의 유한성'으로 모아지는 은유적 사고의 발상지인 것 같다.

조락하는 낙엽이 쌀쌀한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노라면 존재가 반복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그것은 감상적인 고독이나 허무가 아니다. 시간의 흐름은 웃고 우는 두 얼굴을 가졌다고 한다. 시간은 흐르면서 존재를 소멸시켜 가는 동시에 그것을 원숙한 결실에 이르게 해주기 때문이다. 소멸이 죽음의 우는 얼굴이라면 결실은 영원회귀의 얼굴이다. 하지만 이 둘은 하나다. 이 둘을 하나로 볼 수 있는 지혜, 이것이야말로 가을이 우리에게 주는 진지한 메시지가 아니겠는가?

충실하게 익은 열매는 고개를 숙이게 되고, 오래된 경험일수록 고귀한 지혜로 빛나는 법이다. 한 알의 열매가 향기롭게 여물고 한 인간의 삶이 원숙한 모습을 보이기까지는 인고의 긴 시간이 요구된다. 비록 처음과 끝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마디들을 의식하게 됨으로써 삶의 허무와 비극성을 느끼게 되지만, 한편으로 주어진 시간의 유한성을 읽을 수 있기에 인간은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시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얻은 원숙함이란 내적인 것에서 풍긴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파고드는 자기성찰의 모습이다. 시간의 흐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내적인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그것은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진중하다.

세상은 온통 가벼움으로 시끌벅적하다. 그래서 존재의 유한성에서 배어나는 원숙함을 보여주는 가을이 더욱 새삼스럽다. 아울러 내면으로 잦아드는 진지한 목소리의 부재를 아쉬워한다. 신재기문학평론가.경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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