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언론 뭣하고 있나!

##입이 열개라도

미운 오리새끼라 했던가. 언론이 딱 지금 그런 처지다. 옛날 같은 위력도, 옛날같은 기자정신도 사라진 지금이다. 정보화 시대임에도 언론의 위력은 전세계적으로 예전만 같지 못하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 기자들은 정신, 윤리면에서 아직 우리처럼 타락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일본에서도 파벌기자라는 이상한 제도가 있지만 그들은 밀착은 하되 유착은 하지 않는 나름대로의 금도를 지키고 있다. 미국등 선진국 역시 각각 가이드 라인을 설정, 철저히 지킴으로써 공정성등에서 언론의 신뢰를 잃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언론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게 됐다. 권언(權言)유착으로 직업윤리마저 지키지 못했고 추한 돈거래로 언론인의 타락상을 노출 시켰기 때문이다.

##자유로부터의 우려

옛날 영국의 드 타임스는 사설 하나로 정권이 휘청거렸다. 우리도 한때 언론의 위력은 위력적이었다. 4.19학생 혁명에서 보여준 언론의 성공등이 그것이다. 그러던 우리 언론의 오늘 현재 위상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된데에는 자본의 위력 지식정보의 속도 정치권력의 대처능력향상 등 여러요인이 있지만 언론인의 기본자세도 문제다. 시대를 리드하지도, 정치, 경제, 사회 각부분에 있어 개혁이나 민주화를 주도하지도 못했다. 국정운영 방식이 1인 독재형 이라는 논란이 있어도 이것 하나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 빈부격차의 확대등 IMF식 경제회생책이 국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도 이것 하나 여론화 시키지 못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밝혀주거나 비판 해주는 것이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요즘 신문이나 방송은 뭐하고 있나"거나 "옛날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적당히 권력의 편을 들거나 적당히 꼬집고, 어느 때는 확실히 편들어 버리는 것이 옛날과 같다는 뜻이다. 오죽 했으면 여당초선의원 모임인 21세기 푸른정치모임에서 올린 민심보고서에서 조차 "경제는 회생 시켰으나 사회와 정치는 숨통을 막아 놨다"는 민초의 소리가 나왔을 까. 국민들은 답답해 하고 있다.

보도 자세에서도 이회창 총재가 말한 언론정의론은 권력에 위축돼 있는 오늘의 언론인의 가슴을 찔리게 한다. 이총재는 "홉스판사는 산술적 평균으로 판결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했는데, 은퇴후 보니 억압 받는 자 약한 자를 더 많이 배려 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논리로 언론도 그래야 한다"는 주장이다. 언론개혁의 문제도 그렇다. 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권력도 언론도 개혁 되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권력쪽에서는 국정혼란도, 도.감청에 대한 국민불안도 모두 언론보도 때문에 일어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권력이 바라는 개혁은 비판의 확대등 언론자유보다는 언론과 권력의 조화와 협력을 증진 시키는 방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렇게 되면 언론자유는 위축 될 수 밖에 없다. 언론자유를 운운할 면목이 없는 지금이지만 그래도 자유는 있어야 한다.

##그래도 자유는 필요

중국의 유명한 역사서인 사기(史記)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주나라 여왕(勵王)은 "왕을 험담하는 자가 있다니 용서할 수 없다"며 비판하는 자는 닥치는 대로 처벌했다. 그러니 아무도 왕을 비난하지 않게 되었다.이에 왕은 "어떤가 나를 비난하는 자는 하나도 없어졌잖아"하고 큰소리 쳤다. 물론 그는 3년뒤 민중의 봉기로 쫓겨 났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획일화의 악마성이다. 찬양이나 긍정만 있는 하나의 색깔만 인정되는 단색사회에서 남는 것은 결국 파멸이라는 말이다. 빠르고 쉬운 획일화의 효율성에 재미붙이면 시간만 끄는 것 같은 다양성의 조화는 간과하기 쉽다. 비판이란 바로 다양성의 진수이다. 비판 할 수 없으면 진리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칼 포퍼는 열린사회론에서 "과학적 지식이 경험을 통해 오류를 제거하여 성장하듯이 사회는 시민과 언론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평가함으로써 발전한다"고 한 말과 맞아 떨어진다. 미운 언론 이지만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도 언론자유는 지켜져야 하고 또 주어져야 할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