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9명중 5명을 6.25당시 노근리에서 미군의 기관총난사로 잃은 전춘자(60)씨, 어머니를 잃은데다 총상 입은 얼굴 흉터때문에 평생 따돌림을 받고 외롭게 살아온 정구학(56)씨, 그 사건후 평생 두통약을 끼고 살아왔다는 정명자씨 등등…. 이들 유족들은 당시 노근리 양민학살 현장서 기관총사수였던 데일리씨를 만난 자리서 "우리는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진실을 규명해서 미정부로부터 사과를 받고자 한다. 그것만이 구천에 떠도는 외로운 원혼들을 위로하는 길이기 때문이다"라며 끝내 오열했다. 이 자리서 데일리씨는 처음에는 "피란민쪽에서 3, 4발의 총탄이 날아와 미군도 응사했다"고 했다. 그러나 유족측이 "피란민들은 여자와 어린아이가 대부분이었고 총을 쏜적이 없다"고 조목조목 반박하자 "당시 상황이 생존자들의 증언대로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수긍하면서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데일리씨의 증언과 군사전문가들의 당시 상황 설명으로 미루어 '노근리사건'은 최근 코소보나 보스니아에서 빚어진 인종청소의 성격과는 다르다. 당시 대전 전투에 투입된 미군은 거의 신병인데다 전투장비도 시원치 않아 50년7월21일의 전투에서 30%의 병력이 궤멸됐고 사단장이 포로가 될 만큼 북한군에 대한 공포는 컸다. 게다가 북한군은 피란민으로 변장 양민대열에 섞여 있다 뛰쳐나오는 게릴라전술을 자주 사용했기때문에 부대가 궤멸된 미군들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 양민 학살로 이어진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49년이 지난 지금 사자(死者)는 말이 없고 유족들이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미 국방성은 "50년전 참전용사들을 처벌하는 것은 문제"라며 당시 양민학살자에게 면죄부를 줄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양민학살자의 경우 공소시효가 없다'는 국제법상의 관례를 무시한 이러한 발상은 또 하나의 말썽의 불씨는 되지 않을지….또 미국정부는 노근리외 경남북 10여곳, 1천여면의 인명피해에 대한 진상조사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6.25당시 양민학살에 대한 조사는 '지금부터'라는 생각도 든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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