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자가 바라 본 새백년 새천년-(16)에필로그

지금, '보석처럼 반짝이는 초록별'에 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존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자연사라든가 갑작스런 불행따위만 닥치지 않는다면, 인류역사상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던 20세기를 거쳐 새로운 백년, 새로운 천년의 첫 태양을 직접 맞이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일테니까. 사실, 두 세기에 걸쳐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이제 56일후면 2000년. 본격적인 21세기가 시작되는 2001년도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2000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주술적 마력과 세기말의 광기어린 분위기, 그리고 세기초의 신선한 설렘은 우리들로 하여금 묘한 기대감으로 빠져들게 한다. 호기심많은 시간의 사냥꾼들은 이미 21세기의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부지런히 돛을 올리고 있다.

21세기, 그리고 새 천년에 펼쳐질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한세기 이전,'아름다운 세기(Belle Epoque:19세기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 전체가 평화롭고 사치스러웠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인간의 건전한 이성을 신뢰한 나머지 20세기를 낙관의 눈으로만 보았다. 두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미래는 낙관과 비관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여준다. 또한 미래는 매우 정교한 시간의 열쇠로만 열 수 있으므로 우리 중 그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지구가 굉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돌고 있음에도 그 소리가 너무 크므로 듣지 못하듯 시간의 규모 역시 우리의 감지능력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은 미래의 밝은 얼굴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화, 수명의 연장, 생산의 증가, 광신주의의 소멸 등을, 또 어두운 얼굴로는 인구폭발, 자원과 식량의 고갈, 빈부 격차의 심화, 불평등의 확산, 기술발달이 몰고올 가공할 파괴력, 치유할 수 없는 고독, 등을 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분모로 예측되는 것은 다음 세기에 펼쳐질 인간의 삶은 지난 2천년 동안 인류가 일구어온 그 모든 문명의 발전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개되며, 그 영향력은-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순식간에 전지구적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존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자크 아탈리는 21세기에 대한 그의 백과사전적 전망을 통해 이렇게 예견한다. '찬란하고, 환희에 차있으며, 야만스럽고, 행복하고, 기상천외하며, 기괴하고, 도저히 살 수 없고, 인간을 해방시키며, 끔찍하고, 종교적이면서도 종교중립적인 사회'일 것으로.

불확실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곧잘 낙관보다는 비관쪽에 이끌리게 된다. 미래사회에 대해 희망보다는 불안쪽에 시선을 두게 되는 것도 그때문이다. 사람들은 다음세기의 가장 큰 불안의 핵으로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그에따라 야기될 복잡한 사회현상들, 그리고 지난 2000년간 자행했던 자연파괴가 다시 인류에게 재앙으로 되돌아올 두려움 등을 말한다. 지난 10월 12일,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화약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코소보로 날아가 60억번째 세계인이된 한 아기의 탄생을 축하했다. 비록 세계의 평균 인구증가율이 지난 69년의 2%선에서 현재는 1.33%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지만, 아직도 매년 약 7천800만명씩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인구학자들은 세계인구가 2050년 89억명에 이를 것이며, 2200년엔 100억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지구는 끔찍할 정도로 복잡해져서,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천루의 첨단도시 뉴욕도 그때쯤이면 아련한 향수의 도시로 기억될지 누가 알겠는가.

무분별한 자연파괴는 결국 언젠가 대자연의 복수의 칼날앞에 속수무책인 인간의 무력감을 실감케 할지도 모른다. 이미 세계 곳곳의 자연은 심각한 상처들로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자연의 인내가 한계에 이를 때, 땅은 더이상 물을 내놓지 않을 것이고, 곡식들은 이삭을 내밀지 않을것이다. 빈곤과 목마름은 21세기 인류가 풀어가야할 가장 어려운 숙제가 될지도 모른다. 지구상에는 하루 생계비 1달러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재 13억에 이르고 있지만, 2030년경엔 이같은 극빈층이 2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소수의 공룡화된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는 빈곤을 해결하지 못하며,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시켜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제도의 하나인 결혼은 다음 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은밀한 혁명(?)이 예고되고 있다. '일생에 단 한번'이란 결혼관은 상고시대 전통만큼이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가치관이 되고, 웨딩마치가 울리는 순간 이미 신랑신부는 그 약속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부다처와 일처다부의 원시적 결혼형태가 다시 하나의 관습으로 되돌아올 것으로 관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이혼은 인생의 실패가 아닌, 자유를 위한 선택으로 자리매김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것이 일상적인 삶으로 받아들여질 전망이다. 미래사회의 사람들은 개인주의와 정직성을 중요한 미덕으로 삼아 남녀관계, 결혼문제 등에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내보일 가능성이 크기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 지난 두번의 천년동안 언제나 남성의 보조자역할에 머물렀던 여성들은 다음 세기엔 당당한 주역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여성이 약자의 신세를 면치못했던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경제적 미자립 때문이었다. 21세기에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활동 세력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는 세계노동문제전문가들의 예견은 그런 점에서 관심을 끈다. 서방선진8개국(G8)의 경우 이탈리아를 제외한 7개국의 총 노동인구 중 40% 이상을 이미 여성들이 장악해 있다. 세계경제계에선 이런 현상을 '여성경제학'이라고까지 부르며 세계경제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여성파워를 주시하고 있다.

아무튼 거대한 시간의 주사위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때가 되면 던져질 것이다. 한층 복잡다단해질 21세기, 그리고 새천년의 미래사회는 마치 퍼즐게임처럼 우리앞에 놓여지고 우리모두는 각자가 원하는 문명과 문화, 지식과 사랑, 창조, 가치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며 시간의 미로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이다.

全敬玉 문화부장

〈끝〉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