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5년전쯤인 것 같다. 춘천교육대학 부속국민학교 교장으로 남궁선생이 계셨다. 필자와 가깝게 지내던 분으로 인격이 단아했다. 건강도 좋았는데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갔더니 병실을 들어서는 필자를 반갑게 맞으며 "조교수, 내가 조교수에게 신세만 지고 은혜를 갚을 여가도 없이 죽게 되었으니 미안해서 어쩌느냐"라며 필자의 무거운 표정이 무색할 정도로 밝게 웃었다. 그리고 그날밤에 작고했다는 부음을 들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일생을 청산하면서 죽음을 맞는 분을 필자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였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죽음을 어떻게 맞는가,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삶의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이다. 글로 치면 결론에 해당한다. 일생을 멋지게 잘 살았던 사람이라도 죽음을 더럽게 맞으면 일생의 평가는 급전직하로 폄하되고 만다. 평생을 군자연 하던 사람이 여자나 데리고 술을 마시다가 죽었다고 하자. 그 사람이 평소에 이야기하던 군자같은 소리를 누가 믿어주고 누가 그를 추모할 것인가. 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임종에 헛소리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나 자기 구속을 위하여 자꾸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일생을 서툴게 살던 사람이라도 마지막을 값있게 마치면 서툴던 삶도 멋있게 이해되는 수가 많다. 그들을 필자는 '죽음의 행운아'라고 말할 때도 있다. 민영환 최익현 이상재 김구(?) 신익희 등, 특히 근.현대사에 그런 사람이 많다. 전통시대에도 이차돈 정몽주 사육신 등 적지 않다.
구한말 민씨 정권의 세도가였던 민영환은 민영익 민영준(휘)과 함께 명성황후의 정치자금 조달자였다. 그런데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 순국하였다. 당시의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전면 특집으로 그 사실을 보도하였다. 그후 민영환은 잡음을 일소하고 만고의 애국선열로 추앙을 받게 되었다. 지금도 비원 앞에 가면 그의 동상이 지나는 길손에게 충절을 일깨워 주고 있다.
1927년 3월에는 신간회 회장 이상재의 장례가 있었다. 서울에서 충남 서천군 한산면으로 가는 길은 춘삼월 답지 않게 눈물의 행렬로 이어졌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격언처럼 일생을 대범하게 살다 간 님이기에 겨레의 마음을 더욱 울렸다. 1927년 2월에 민족진영과 공산진영이 협동하여 역사상에는 단 한번 있었던 좌우통일전선으로 신간회가 결성되었는데 거기에서 양진영이 추대한 회장이 이상재였다. 통일의 대부였던 셈이다. 그가 그해 3월에 작고한 것이다. 어찌 춘삼월이라 하여 눈물이 흐르지 않으랴.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오늘이고 보면 그때의 눈물이 지금인들 말랐다고 말하랴.
신간회의 정성도 모른체 해방 조국에는 분단정부가 수립되고 말았다. 미.소가 점령한 남북에는 그에 걸맞게 미국과 소련에서 훈련받은 정권이 들어섰다. 그때 38선을 베고 죽을지언정 단독정부 수립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외치던 김구 김규식이 노구를 이끌고 남북협상의 길에 올랐다. 그때 김구는 공산당으로 몰리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1949년 6월에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때 이승만정권은 만민특위사건을 일으켜 친일파의 생존권을 확보한 연후에 그에 반발하고 끝내 남북협상을 고집하던 김구를 죽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땅에 정의는 짓눌리고 친일파와 친일군벌이 성장하게 되었다. 그 힘으로 친일정권이 연이어 집권하는 해괴한 역사가 전개된 것이다. 순리로 안되면 쿠데타를 일으켜서라도 집권했다. 그러나 역사는 육신의 죽음 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진실된 힘을 가지고 있다. 김구가 죽은지 50년만에 평양에서 합동추도식을 갖자고 제의해 왔다. 실현은 안되었지만 드디어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할 인물이 탄생한 것이다. 평양에서도 백범기념관을 세운다는 소식이다. 1949년의 암살이 죽음의 미학으로 반전되는 이야기가 아니더냐.
국민대 명예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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