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손수현씨 부친유해 중국서 송환까지

만리타향을 헤매다 59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부친의 유해를 맞은 손수헌(70·대구시 북구 산격3동)씨 가족은 만감이 교차했다. 빈소에 앉은 수헌씨는 부친 손양덕(1906년생)씨의 젊은 시절 사진으로 만든 영정을 바라보며 생사가 갈린뒤에야 겨우 만날수 있게 된 현실에 설움이 더욱 북받쳤다.

경북 봉화에서 살던 손양덕씨가 중국 하얼빈으로 떠났던 것은 일제의 말기인 1940년. 수헌씨는 "부친은 항상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 의사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며 "부친이 안의사의 유지를 이어받기 위해 하얼빈으로 가셨다고 생각하고 동무들에게 자랑도 많이 했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분단과 중국의 공산정권 수립으로 이어지던 격동의 시기, 부친이 중국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면서 간간이 이어지던 부자간의 연도 완전히 끊어졌다. 부친의 제사상까지 모시던 수헌씨가 중국 적십자사를 통해 부친의 편지를 받은 것은 지난 75년. 당시 70세였던 부친은 '고향땅에 묻히고 싶다'고 전해왔다.

수헌씨는 지난 89년 잠시 부친과 해후할 수 있었다. 모친은 돌아가신 뒤였다. 그러나 부친은 중국에 2남1녀의 새가정을 이루고 있었던데다, 재중동포에 대한 냉대에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던 끝에 다음해인 90년 중국으로 돌아가 숨지고 말았다.유해나마 거둬서 부친의 유지를 이루려고 했던 수헌씨. 국내 관계 당국과 중국 정부에 수차례 부친을 모시게 해달라고 청원했지만 당시의 한중 관계에서는 유골 송환이 허용되지 않았다. 수년간에 걸친 수헌씨의 애타는 청원이 성과를 거둔 것은 올해 초. 결국 부친의 유해는 하얼빈을 떠난 9일 밤 수헌씨의 집으로 돌아왔다.10일 아침 대구시립공원 칠곡묘지로 떠나던 수헌씨는 "평생 부친을 그리기만하다 돌아가신 모친의 곁에 부친의 유해를 안장하겠다"며 "세월 속에 묻혔던 부모님과 형제들의 한을 이제야 풀 수 있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李宗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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