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건실체 베일속으로 숨나

'언론대책 문건'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하드디스크 파일복원 실패로 사실상 끝내기 수순에 돌입했다.

검찰은 지난 13일 이종찬(李鍾贊) 부총재를 재소환, 조사하고 5박6일간 검찰청사에 머무르던 문일현(文日鉉) 기자를 귀가조치함으로써 명예훼손 사건의 고소인·참고인 조사를 모두 마쳤다.

이제 남은 조사대상은 피고소인인 정형근(鄭亨根) 의원 한명 뿐이다.

검찰은 정 의원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진술과 방증을 확보, 곧 강제구인 절차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정 의원이 이 사건 외에 서경원(徐敬元) 전 의원과 국민회의의 명예훼손고소·고발사건에도 피고소·고발인으로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만큼 함께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여러 사건에 연루된 만큼 반드시 출두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하겠다는 복안이다.검찰은 문건사건과 관련, 지난 4일 첫 소환통보 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서면·전화로 출두를 요구했으나 정 의원은 일체 소환에 불응해왔다.

따라서 검찰은 주초에도 한두차례 소환장을 보낸 뒤 불응할 경우 현재까지 드러난 혐의 만으로 체포영장을 청구, 법무부를 통해 국회에 체포동의 요구안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정 의원이 완강히 버티고 있는데다 여·야가 벌써부터 정 의원 출두 문제를 놓고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어 강제소환이 쉽게 이뤄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체포동의안 자체가 정쟁의 대상이 될 경우 사건은 의외의 장기전 양상으로 빠져들 공산도 크다.

어쨌든 검찰은 정 의원을 조사하기전까지는 수사결과를 발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의혹만 부풀린채 어정쩡한 상태로 남아 정치권의 공방을 재연시킬 가능성이 더욱 농후해졌다.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줄 결정적 물증으로 여겨졌던 하드디스크 파일복원 실패는 수사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힘과 동시에 검찰에 커다란 부담으로 남게된 셈이다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물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을 뿐 수사에 별다른 차질은 없다"면서 "문 기자에 대한 장시간 조사를 통해 사신의 내용도 개략적으로 파악한 상태"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결국 '진술에만 의존한 수사'라는 비판과 사신의 내용, 언론대책문건이 실제로 실행됐는지 여부에 대한 의혹등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최고의 기술진이 동원된 복원작업에도 실패할 정도로 완벽하게 파일을 지웠다면 더더욱 '뭔가 숨겨야만 할 내용'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라는 개연성이 높아지는 셈이고 그만큼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기 때문이다.

관련된 문제로 문 기자에게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할 지 여부에 대해서도 검찰은"구체적인 행위의 태양(態樣)을 검토해봐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문 기자와 이 부총재의 관계에 대한 규명도 석연찮은 상태다.

문 기자의 하드디스크내 팩스관리기에는 이 부총재에게 보낸 또다른 문건이 남아있을 수 있고 어딘가에 이번 언론대책문건과 유사한 파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지만 검찰은 더이상 복원작업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본인의 동의없이 임의제출받은 사유물을 마구 헤집고 다닐경우 비밀침해의 우려가 있다며 문건원본 및 사신 파일을 찾지 못한데서 한발짝도 더 나가지 않을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결국 검찰이 내린 결론은 문 기자가 제3자와 상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문건을 작성해 평소 친분이 있던 이 부총재측에 보냈지만 이 부총재는 이를 보고받지 못했고, 다른 한편으로 이 문건을 절취한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 기자로부터 문건을 넘겨받은 정 의원이 이를 폭로함으로써 아무 관련이 없는 이강래(李康來) 전수석의 명예를 훼손하게 됐다는 것으로 맺어진 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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