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출발이 50일도 안 남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요즘 새 천년 맞이에 대한 다양한 관심 표출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각 기관에서는 앞다투어 새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전국 해돋이 명소 근처의 숙박업소는 2천년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예약이 벌써 끝난 상태라고 한다. 마치 새 천년을 맞이하면 새 역사가 시작되고 우리 삶에 대전환이라도 일어날 듯이 다소 요란스럽다.
과연 새 천년의 시작은 지금 요란스러운 만큼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줄 것인가? 분명, 그날이라고 해서 해가 더 크고 더 붉게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날의 태양도 어제나 오늘과 똑같은 모양으로 우리에게 빛으로 밝아오고, 또한 그늘을 만들 것이다.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해도 새 천년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진행된다. 새 천년에 부여한 그 많은 의미들이 혹시 관념에 의해 조작된 환상이나 허망한 꿈의 투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다만 시간의 뚜렷한 흐름만을 감지할 따름이 아니겠는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흐르는 시간의 물살에 밀려 순식간에 과거 속으로 떠내려가고 말기 때문이다. 시간은 현재에 존재하는 생명의 잠식인 셈이다. 늙어가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것은 바로 시간이기에. 그것은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하며 영원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이다. 그런데 흐르는 시간의 마디마디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하나의 의식(儀式)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시간에 대한 공포감을 덜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시간에 대한 거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든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시간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는 일이다.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것이 부과하는 무게와 마찰은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탈출하여 영원을 꿈꾸기보다는 시간 속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때인 것 같다. 신재기.문학평론가.경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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